"15년 전 학원 제자한테 밥 얻어 먹고 울었다"…30대 취준생 사연 '먹먹'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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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소봄이 기자 = 우울증을 앓는 30대가 음식점 앞에서 옛 제자를 만나 밥을 얻어먹고 큰 위로를 받은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1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옛 제자한테 밥 한 그릇 얻어먹었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 A 씨는 "2년 전 회사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 잘리듯 나온 뒤 재취업을 못 하고 있다"며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존감은 떨어지고 최근 들어선 입맛까지 없어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하루하루 저 자신이 싫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다 보니 올여름에는 바깥에 나가지 않고 지내다가 가을을 맞이했다며 "시간 개념도 없이 사는구나 싶어 슬펐다. 근데 며칠 전부터 칼국수를 되게 먹고 싶었는데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서 뭉그적거리다가 병원 갈 겸해서 나갔다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A 씨는 가게 안이 사람들로 북적이자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를 맴돌며 망설였다고 한다. 이때 웬 젊은 학생이 다가와 A 씨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했다.

알고 보니 15년 전 스무 살이던 A 씨가 아르바이트하던 학원에 다녔던 학생이었다. A 씨는 "15년 전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났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지라 종종 아는 사람을 만나곤 하는데 그때마다 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숨고 도망갔다. 근데 기억에 없는 낯선 사람이 다가와 피할 틈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너무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하는 거라 당황스럽고 제 꼴도 영 추레해서 많이 창피했다"라며 "대충 아는 척만 하고 바쁜 일 있는 것처럼 자리 뜨려고 했는데 같이 칼국수를 먹자더라. 거절하려고 했는데 학생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가게 안에서 학생은 말 한마디 안 걸고 웃기만 하다 조용히 칼국수를 먹고 값까지 치렀다고. 그러면서 A 씨에게 "그때 저 부모님 이혼하고 힘들었는데 선생님이 관심 가져주셔서 좋았다. 선생님 덕분에 사람 구실하고 살아요. 감사해요"라고 인사했다.

A 씨는 "그 말을 듣고 저는 어떤 대꾸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데 학생은 아무렇지 않게 손 흔들면서 가버렸다. 고맙다는 말도, 네가 누구인지 기억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다. 얼어버렸다"라며 "칼국수도 내가 사줬어야 하는데, 커피라도 한 잔 사서 쥐여주는 건데 싶어서 집에 오는 길 내내 후회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A 씨는 집에 와 눈물을 쏟았다며 "밤새 울었다. 참 멋지게 잘 큰 학생인데 이름을 기억 못해서 미안했다. 집에 틀어박힌 이후로 부모님 연락처, 친척들 얼굴 등 다 까먹고 기억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고백했다.

그는 "옛날에 아르바이트했던 기억만 남았지, 거기서 누굴 만나서 어떤 대화를 했는지 전혀 모르겠는데도 그 친구가 건넨 감사 인사 한마디와 칼국수 한 그릇이 너무 따뜻해서 자꾸 눈물이 난다"면서 "다음엔 마주칠 땐 제가 좀 떳떳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sb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