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간선도로 지하화'…평범한 일상 위협받는 주민들[박응진의 참견]
- 박응진 기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서울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으로 인해 한 동네가 떠들썩해졌다. 집 바로 앞에 지하화 동부간선도로 월릉IC 램프-A 구간(진입 구간)이 들어선다는 갑작스러운 발표에 주민들이 놀라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이다.
동대문구 이문동의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과 중랑천 사이엔 총 1500여 세대가 사는 3개 브랜드의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다. 주민 구성은 어린 자녀를 둔 신혼부부부터 70~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이 아파트 단지와 인접한 중랑천 바로 옆으로는 송파구 장지동 복정 교차로와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상촌 나들목을 잇는 약 32㎞ 길이의 동부간선도로가 자리하고 있다. 중랑천 둔치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2029년 9월을 목표로 추진 중인 동부간선도로 지하화는 차량 통행시간이 50분대인 노원구 월계동-강남구 대치동 구간을 10분대로 단축하기 위한 민간투자사업이다. 사업 구간은 10.4㎞로, 지하화 된 동부간선도로 위엔 수변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문제는 동부간선도로 진입 구간이 아파트 단지로부터 불과 18여 m 떨어진 곳에 들어선다는 걸 공사 시작 한 달 전에야 주민들이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 2023년 사업 설계 당시 주민설명회를, 이후 공청회를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절차를 알고 있던 주민은 극소수였다.
주민들은 굴착공사로 인해 아파트 건물 안전에 영향을 주진 않을지, 주변 도로나 단지에 싱크홀(땅꺼짐)이 생기진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신이문역을 기준으로 아파트 단지 너머 이문2동 복합청사 공사현장에선 지난 7월 싱크홀이 발생해 건물이 기울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이에 건설사인 대우건설은 싱크홀과 장비 전도 방지 등을 위한 안전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공사 소음과 비산먼지 저감을 위한 대책을 세운 상태이다.
주민들은 무엇보다도 지금의 중랑천 둔치 산책로를 잃게 된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와 보행기·휠체어에 의존한 어르신 등 하루 평균 1500여 명의 주민들이 즐겨 찾는 보행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개장한 황톳길도 함께 있어 주민들에겐 '힐링'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산책로를 통해선 인근 초등학교로 매일 120여 명의 학생들이 등하교를 하고 있기도 하다. 맞은편에도 보행로가 있지만, 그 폭이 좁은 데다 학교까지 가는 길에 있는 2개의 횡단보도는 지하도로와 연결돼 있어 우회전 차량 등에 따른 사고 위험이 높다.
이뿐만 아니라 시와 건설사의 계획대로 공사가 끝나더라도 정작 이곳 주민들이 지하화 동부간선도로를 이용하기 위해선 먼 곳으로 우회해 진입해야 한다. 공사 기간 소음과 진동, 분진을 견뎌내도 코앞의 동부간선도로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문동 산책로 보존 주민모임은 최근 호소문을 통해 "주민들은 공사 시작 전까지 어떠한 의견도 제출할 기회가 없었고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그 많은 고통의 대가는 산책로의 소멸과 동네의 고립, 소음과 매연 뿐"이라고 토로했다.
주민들이 공사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건 아니다. 대다수 주민들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마련된 공사 계획인 만큼, 이제라도 동부간선도로 진입 구간 위치 변경 등 의견을 수렴해 최소한 주민들의 안전과 생활권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선 아파트 단지로부터 보다 멀면서도 산책로를 보존할 수 있도록 시와 건설사가 진입 구간을 변경할 수 있지만, 사업비 절감 때문에 주민들의 삶과 환경을 희생양 삼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민 반발에 착공 시점을 11월로 한 달 미룬 시와 건설사는 비용 문제보단 주민들의 삶과 환경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주민모임은 850여 명의 의견을 모아 지난 10일 구청과 시청에 전달했다.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르신들이 운동하던 산책로는 이제 주민들의 '아지트'가 됐다. 커피를 내리던 카페 사장님은 주민모임의 주축을,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기획을 맡게 됐다. 구청과 지역구 의원들의 소극적인 대응에 주민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뜻하지 않은 '감투'를 쓰게 된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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