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민경 여가장관 후보자가 재소환한 '비동의강간죄'…다시 불붙는 찬반

"폭행·협박 밖 강간죄 사각지대" vs "무고 우려"
'피해자 동의' 쟁점…여가부, 재추진 여부 주목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하며 지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5.8.18/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비동의 강간죄 개정 논의 공론화를 예고하면서 찬반양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폭행·협박 외에도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동의 여부를 판별하기 어려워 무고 위험이 커진다는 우려가 맞서고 있다.

25일 여가부에 따르면 원 후보자는 비동의 강간죄에 관해 "반대 의견을 포함해 현장, 전문가, 당사자, 관계 부처인 법무부와 다양한 의견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최선의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비동의 강간죄는 현행 강간죄의 성립 요건인 폭행·협박 이외에도 피해자의 비동의, 공포심, 위계 등의 이유로 발생한 성폭력 범죄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입법이 논의되는 방안이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을 행사하지 않았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항거 곤란의 정도는 아니었지만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던 경우, 공포심에 저항 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피해를 당한 경우, 위계·위력의 관계에서 성폭력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포함해 현행 강간죄가 성적 자기결정의 자유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여성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지난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정치권과 여성계를 중심으로 비동의 강간죄 도입 요구가 커졌다. 이후 나경원 의원, 심상정 전 의원 등이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법조계·학계 등의 비동의 강간죄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명확한 동의 없는 성교는 범죄'라는 규범을 강제할 경우 성적 자기결정 자유를 제약할 수 있으며 예외 경우가 많아 규범이 실제 현실에 정착하기도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컸다. 결국 입법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원 후보자는 "강간죄 개정 논의는 형법상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성폭력의 판단 기준을 기본권의 측면에 두고자 하는 논의로 알고 있다"면서도 "다만 이에 대한 이해 부족과 우려 의견 있는 것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22대 총선 국면에서 발표한 10대 정책공약에 비동의 강간죄 내용을 포함했다가 철회한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은 "비동의 간음죄는 공약 준비 과정에서 검토됐지만 장기 과제로 추진하되 당론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실무적 착오로 선관위 제출본에 검토 단계의 초안이 잘못 포함됐다"고 밝혔다.

검사 출신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비동의 강간죄처럼 내심의 의사인 '동의 여부'에 따라 형사 처벌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무고죄와 함께 사법 체계상의 균형도 필요하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민주당도 신중한 입장이었다"며 "원 후보자를 지명한 이 대통령은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할 건지 국민께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고 피해에 대한 우려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반대하는 주된 사유다. 피고발자가 직접 피해자 동의 여부를 입증하며 수사 기관의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다만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범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기준은 세계적 추세로 고려되고 있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지난 2018년 3월 한국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에 한정하지 말고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일본도 2003년 116년 만에 형법을 개정해 '강제 성교죄' 이름을 '부동의 성교죄'로 바꾸고 폭행과 협박이 없더라도 피해자 동의가 없었다면 강간죄가 성립하도록 했다.

앞서 여가부는 2023년 비동의 강간죄 도입 검토를 담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했지만, 법무부와 정치권 반대로 반나절 만에 철회한 바 있다. 원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오는 9월 초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법 도입 추진 의지와 방향을 밝힐지 주목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여성가족부 장관에 원 후보자를 지명한 것은 정부의 새로운 의지로 여겨진다"며 "강간죄 개정이 양성평등기본계획, 성평등위원회, 여성폭력방지기본계획에서 제대로 검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b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