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불면·늦은 취침…11세 수면장애, 자살 위험 9.8배 높아진다[김규빈의 저널톡]
덴마크 연구진, 청소년 약 3만명 분석
정신과 병력 없어도 수면 문제만으로 자살 위험 증가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청소년기 수면 장애가 향후 자살 위험을 최대 10배 가까이 높인다는 대규모 종단적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잠을 적게자거나 늦게 잠드는 습관, 악몽을 자주 겪는 아동일수록 청소년기에 자살 충동과 자살 시도 위험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3일 마틴 에크홀름 미켈센 박사가 이끄는 덴마크 자살예방연구소 연구팀이 1996년부터 2003년 사이 덴마크에서 태어난 청소년 2만 8251명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11세와 18세 시점에서 각각 수면 습관과 자살 관련 행동을 평가했고, 설문조사와 병원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자살 위험 요인을 추적했다.
참가자들은 두 시점(11세, 18세)에 걸쳐 △수면 시간 △취침 시각 △악몽 빈도 △입면 곤란 빈도 △수면 장애 누적 개수 등을 조사받았다. 구체적으로는 하루 수면 시간이 9시간 미만이거나, 오후 10시 30분 이후에 잠자리에 들거나, 악몽을 자주 꾸거나,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경우를 기준으로 수면 장애 항목을 구성했고, 각 항목을 0~3개 이상 겪은 경우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하루 9시간 이상 자는 아동을 기준으로 11세에 8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한 아동은 자살 충동 위험이 1.7배, 자살 시도 위험이 3.7배 높았다. 8~9시간 수면을 취한 경우에도 자살 생각 위험은 1.1배, 자살 시도 위험은 1.3배 높았다.
오후 9시 이전 취침자와 비교했을 때, 오후 10시 30분 이후에 잠자리에 드는 아동은 자살 시도 위험이 3.3배, 악몽을 자주 꾸는 아동은 자살 시도 위험이 2.1배 높았다. 입면 곤란을 겪는 빈도가 많을수록 위험은 비례해 증가했고, 매일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동은 자살 시도 위험이 3.6배에 달했다.
특히 수면 장애를 3가지 이상 겪은 아동은 자살 시도 위험이 9.8배까지 치솟았다. 또한 11세와 18세 두 시점 모두에서 주 1회 이상 입면 곤란을 보고한 청소년은 자살 시도 위험이 6.7배에 달했다.
이 같은 경향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집단을 제외해도 유지됐으며, 자살 충동 항목에서 '모르겠다'고 응답한 집단을 제외했을 때도 분석 결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수면 장애는 단순히 다른 정신 질환과 함께 나타나는 증상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자살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뜻이다.
연구진은 "11세에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늦게 잠들고, 악몽이나 입면 곤란을 겪은 경험은 향후 자살 충동과 시도의 위험을 꾸준히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며 "다양한 수면 문제를 동시에 겪을수록 자살 행동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밝혔다. 또 "수면 문제가 있는 아동은 충동성, 정서 조절 장애, 정신 질환, 인지 기능 저하 등과도 연관이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진은 수면 장애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대처 능력을 약화하며, 수면 중 정서적 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충동성과 패배감이 심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악몽과 불면을 겪는 청소년은 ‘덫에 걸린 듯한 느낌’, ‘회복 불가능한 감정적 고립감’을 더 자주 경험하며, 이러한 감정은 자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자살 시도 여부는 18세에 자가 보고된 설문과 덴마크 전역 병원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확인됐다. 병원 기록에는 ICD-10(국제질병분류 제10차 개정판) 코드가 사용됐다. 이 중 '고의적 자해'에 해당하는 항목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으며, 실제 자살 시도로 판단된 사례만을 포함했다. 전체 응답자 중 자살 충동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2.0%(8894명), 자살 시도는 3.3%(743명)였다. 자살 시도자의 약 60%는 병원 치료 기록이 있어 공식 통계와도 일정 부분 일치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 수면 문제가 정신 건강 문제의 '예고 신호'일 수 있다고 본다. 수면 시간, 입면 시간, 수면 질 등의 기본적 지표를 통해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 선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진은 "청소년기의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자살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며 "특히 수면 장애가 누적되거나 지속되는 경우 정신과적 개입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면 위생에 대한 교육, 수면 전 전자기기 사용 제한, 학사 일정 조정 등을 통해 청소년 수면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며 "수면 문제가 자살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며, 인지행동치료 등 효과적인 개입법 개발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국제 임상 및 건강 심리학 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Clinical and Health Psychology) 6월 호에 게재됐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다면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 친구)'을 통해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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