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은 아직 섬 안에 있다…그러나 공존을 선택한 주민들

완도 '평일도' 아령 살인사건, 유력용의자 물증 확보 못해[사건속 오늘]
마을 주민 "모두 친인척, 섬사람은 범인 알아도 말 안해" 미묘한 발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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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학진 기자 = "육지 사람들은 이해 못 한다. 섬은 다르다 한 번 살아봐야 안다" 도대체 이 섬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8년 전 오늘. 전남 완도 인근, 마을 주민을 다 합쳐도 10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말 그대로 평화로운 섬이라고 명칭 된 '평일도'의 한 마을에서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다.

평화롭지만 고립된 이 섬마을이 공포의 밀실로 변하는 순간이다.

◇ 평화로운 섬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

결혼한 자녀들을 육지로 보내고 아내와 사별한 뒤 홀로 지내던 80대 마을 주민 A 씨가 2016년 5월16일 자기 집 안방에서 피로 물든 이불 위에 누운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A 씨의 이마와 머리 쪽에선 무언가에 찍힌 상처가 여러 곳 보였다. 또 시신 옆에는 A 씨에게 충격을 가한 듯한 물체로 보이는 피 묻은 아령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주민들은 A 씨에 대해 "마을에서 나쁜 소리 한번 듣지 않았던 분이다" "누군가와 싸운 적 없는 점잖은 분이다" "이 부락의 어른이고 존경받는, 법 없이도 살 분"이라며 누군가에 의해 타살당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A 씨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도 아니었다. 경영하던 미역 공장이 부도가 난 뒤 넉넉지 못한 형편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A 씨는 강도를 당하거나 살해될 가능성도 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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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발견 후 1시간 뒤 이뤄진 경찰 신고, 대체 왜?

숨진 A 씨는 매일 마을회관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며 주민들과 함께 화투를 치거나 밥을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A 씨가 숨진 그날 마을회관에 있던 주민들은 A 씨가 보이지 않자 A 씨에게 연락했지만 받지 않자, 주민 세 명은 궁금한 마음에 A 씨의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16일 오후 4시. 친척 동생 C 씨는 방에 들어갔다. 그 순간 방 안에서 퍼지는 피비린내에 C 씨는 혼비백산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따라오던 또 다른 주민 D 씨가 방 안으로 들어가 A 씨의 시신과 마주했다.

평소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염을 도맡아 했던 D 씨는 죽은 사람의 손 다리를 펴줘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손으로 A 씨의 시신을 잡아 어깨와 허리를 펴고 반듯하게 눕혔다. 이때 사후 경직 상태를 손으로 직접 느낀 D 씨는 A 씨의 사망 시각을 3~4시간 전인 낮 12시쯤이라고 추측했다.

이후 E 씨가 도착해 A 씨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당시 이들은 늦은 신고 이유에 대해 "타살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시신을 만졌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A 씨는 평소 폐가 좋지 못해 종종 각혈했고 목격자들은 A 씨 주변의 혈흔에 대해 고령의 A 씨가 피를 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잠을 못 잘 정도로 극도의 통증이 있었던 A 씨가 이를 이기지 못하고 자해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신고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평화로웠던 섬을 공포와 충격에 빠트린 참혹한 살인의 현장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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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미스터리한 사건 현장

목격자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정수리 부분이 뭔가의 타격과 충격에 의해 함몰돼 있는 것이 육안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타살이라고 확신을 했고 부검 결과 A 씨의 사망 원인은 고도의 두부 손상으로 누군가 둔기로 A 씨의 머리를 수십차례 내려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A 씨의 몸에서는 공격을 막으려 한 방어흔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사건 현장에 침입한 흔적도 없었다. 특히 서랍장에 있었던 수십만의 현금도 그대로 놓여 있는 등 금품 탈취 흔적 또한 없어 의아함을 안겼다.

과학수사팀도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아령과 문앞의 혈흔 방향과 낙하지점 위치 등을 분석해 타살의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경찰 역시 같이 판단했다.

또 현장을 찾은 프로파일러는 "섬 중에서도 작은 곳"이라면서 "외부 사람에 의한 범행으로 보기에는 가능성이 너무 낮다. 아직 범인이 섬 안에 있을 것이며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고, 경찰은 타살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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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목격자의 진술 토대로, 주민들 조사 실시

사건 당시 한 차량이 대문을 비추고 있었다. 차량 내부 블랙박스를 조사했지만 차는 계속해서 이동해서 사건 현장에 대한 단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A 씨의 집을 비추고 있던 마을 유일한 CCTV 화면을 분석하며 A 씨의 집 앞에서 몇분간 어슬렁거리고 있던 희미한 물체를 포착했다. A 씨가 죽기 전 누군가가 집 앞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경찰은 목격자를 상대로 최면수사를 동원해 인물의 얼굴을 구현했지만, A 씨와 외형이 확실히 다른 남성이었고, 유일한 목격자가 언급한 인상착의를 토대로 비슷한 연령대의 주민들을 조사했다.

◇ A 씨가 죽기 직전 통화한 유력용의자, 알리바이도 엇갈려

경찰은 당시 A 씨의 통화기록도 확인했다. A 씨의 사망일인 16일 그의 통화 기록은 수신, 발신을 포함해 총 5회였고, 그중 광고 문자 2건을 제외한 3건은 모두 A 씨와 가까운 거리에 사는 B 씨와 한 것이었다. 마지막 통화 기록은 오전 5시 54분 역시 B 씨였다.

마을주민, 면식범이라는 전제하에 조사하던 경찰은 B 씨를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집중 수사를 시작했다. B 씨는 A 씨와의 통화 이유에 대해 "당시 호박 모종이 집에 있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이 와서 이를 가지고 왔다. 그래서 통화를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B 씨의 통화 목록에서는 A 씨가 아닌 B 씨가 먼저 발신한 내용이 확인됐다. 또 사건 당일 알리바이 역시 맞지 않았다. B 씨는 "호박모를 갖고 온 뒤 밭에서 작업을 하고 손주와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당시 손주와 B 씨는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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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를 믿을 수 없다" 거짓말탐지기 조사 거부한 B 씨

B 씨는 경찰이 용의선상에 가장 위에 올려둔 인물이었다. 그는 용의선상에 있던 인물들에게 실시했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왜 경찰은 그에 대한 특정을 하지 못했을까

당시 경찰은 B 씨의 동의를 받고 조사실에 들어갔지만 "머리가 아프다" "혈압약을 복용한다"며 이를 거부했다. 또 추후 B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컴퓨터를 믿을 수 없다" "몸이 좋지 않다"며 끝까지 거짓말탐지기 조사 요청을 거부했다.

또한 경찰에 따르면 B 씨는 조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당황스러운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며 진술을 회피했다.

커다란 의문점이 발견된 B 씨를 긴급체포한 경찰은 추가 조사를 벌였지만 B 씨는 범행을 계속해서 부인했고, 신병만 확보했을 뿐 범행 동기와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해 유력 용의자인 B 씨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 유력 용의자 풀려나 사건은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

유력한 용의자가 풀려나면서 경찰 수사도 답보 상태에 놓이고 말았다.

수사 과정에서 한 주민은 섬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며 "외지인이었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섬에 같이 사는 사람들은 설령 안다고 해도 말을 안 한다. 모두가 친인척 관계다. 사촌에 팔촌, 오촌, 육촌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한다. 섬에 살면 그렇게 된다. 육지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한다"고 미묘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경찰은 수사가 장기화하자 신고포상금 500만 원을 내걸고 전단지를 제작해서 뿌렸다. 하지만 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해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섬마을 주민들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살인범일 지도 모르는 이웃과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khj8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