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수'된 집단이탈 초강수…일리있는 주장에도 '싸늘한 여론'

[서상혁의 팩트프레소]수가 문제 해결 먼저 vs 대책에 이미 포함

편집자주 ...현대 사회를 일컬어 '인포데믹(infodemic)의 시대'라고 합니다. 한번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습니다.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수많은 정보 중 '올바른 정보'를 더 많이, 더 자주 공급하는 것이죠. 뉴스1은 '팩트프레소' 코너를 통해 우리 사회에 떠도는 각종 이슈와 논란 중 '사실'만을 에스프레소처럼 고농축으로 추출해 여러분께 전달하겠습니다. 제보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전국 16개 시·도 의사들이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해 마무리 집회를 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2.25/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대학병원 일부 의사들이 손을 놓은 지 벌써 일주일이 됐습니다. "밥그릇 지키려 환자를 인질로 삼고 있다"며 의료계를 향한 비난도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죠. 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가 진료를 거부하고 있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합니다.

이들의 집단 행동을 '밥그릇'과 떼어 놓고 보긴 어렵습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시장을 나눠 먹을 의사가 쏟아진다는데 예민한 게 당연하죠.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에는 노다지로 여겨진 혼합진료를 제한하는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다만 "증원은 어렵다"는 의료계의 주장 중에는 귀담아들을 내용도 있습니다. 지금의 필수의료 공백이 비대칭적인 수입 차이에서 벌어진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죠.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 일도 힘든데 소송까지 빗발치는 '필수의료'…"차라리 개원해서 돈 벌자"

의료계는 '필수의료·지방의료 공백'이라는 정부의 문제의식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의사 부족'이 아닌 수가 차이에 있다고 보고 있죠.

수가란 진료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건강보험 수가가 낮은 편입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17년 기준 한국의 병원비 수준은 66으로 평균치(100) 대비 크게 낮았습니다.

특히 소아청소과·산부인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 등 소위 필수 의료과의 건강보험 수가는 해외 주요국에 비해 많이 낮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익성이 낮다 보니 대학병원도 필수의료 인력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안'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 산부인과의 자연분만 수가는 1040달러로 미국의 11분의 1, 영국의 9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수술 난도에 따라 수가를 더 지급하고, 대만도 필수의료 진료에 추가로 지급하죠.

특히 필수의료과는 수술도 어렵고 응급 상황이 잦습니다. 의료 소송 부담도 크죠. 그래서 의료계의 '3D'로 꼽힙니다. 어렵고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느니, 차라리 개원해서 비급여로 돈을 벌자는 인식이 퍼지면서 필수의료 공백이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업무 강도나 소송 위험을 감안하면서 일하는데 왜 피부과 같은 진료과보다 낮은 대우를 받아야 하냐는 것"이라며 "외국 같은 경우는 고난도 수술에 대해선 보상이 높긴 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수가 차이를 풀지 않고선 의대 정원을 늘려도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죠.

◇의료계 '수가 인상' 요구 받아들인 정부…그런데 왜 이러나

사실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엔 의대 증원 말고도 그간 의료계가 지적해 온 수가 인상, 의료소송 대책, 지역의료 활성화 방안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문제는 의사들이 정부 대책을 믿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의대 증원 계획 이외에는 구체성이 떨어져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죠. 실제 정부는 4월 중 의대 증원분 배정을 끝내겠다고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한 흉부외과 교수는 "필수의료 확충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감없이 공개한 후에 증원을 논의했으면 정부의 계획을 더 신뢰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신경외과 전공의도 "수가 인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인데, 우선 의대 증원부터 해놓고 나머지는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대 증원은 미래 자원에 관한 사안이고, 수가 인상은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입니다.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주장이라도 환자를 인질로 잡는 건 정당한 행동이 아닙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수의료 공백을 메워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환자를 두고 떠나다니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수가를 올리려면 국민의 동의가 필수인데요. 지금 상황에서 의료계를 지지해 줄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요.

hyu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