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선도, 서울하면 떠오를 수 있도록...사명감으로 디자인
권은선 서울시 공공디자인 진흥팀장 인터뷰
"서울이 힙해지고 영해져서 좋다"는 칭찬도
- 문혜원 기자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서울시의 지하철 노선도가 40년 만에 개선 작업을 거쳐 지난 달 14일 공개됐다.
1980년 처음 지하철 노선도가 만들어졌을 때는 노선이 4개였다. 노선은 계속 늘어나 현재 23개다. 여기에 2025년도까지 노선 10개가 추가될 예정이다. 지하철 노선도는 더 이상 같은 모양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시는 시각·색채·디자인·인지·교통 등 분야별 전문가 의견을 거쳐 추가 확장 노선을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지하철 노선도를 선보였다. 새로운 노선도는 모두가 읽기 쉬운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지난달 21일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 개선 작업 총괄을 맡은 권은선 서울특별시 공공디자인진흥팀장을 만났다.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서울시에서 근무한다. 사연이 있는지?
▶디자인 전공자 중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다.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서울의 간판을 멋진 서체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서울시에서 근무하게 된 이유다. 서울시에서 일하면서 ‘서울서체’를 디자인 해 서울의 간판을 정립한 적이 있다. 공공 디자인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력을 미친다.새 지하철노선도도 그중의 하나이고 보람을 느낀다.
-지하철 노선도를 언제부터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 노선도를 보면서 우리도 해외처럼 멋진 노선도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년 전부터 준비했다.
-새 지하철 노선도에 대한 반응이 좋다. 가장 잘 개선됐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환승역이다. 기존 환승역은 태극 문양이었다. 태극 문양이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익숙해서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혼선을 주는 문양이다. 외국인들은 태극마크인 환승역을 보고 "여기 뭔가 특별한 게 있나, 무슨 축제가 있나"하는 반응이다. 그래서 국제표준형인 신호등 표기를 가져왔다. 또 외국인은 한글을 옮겨적은 영문이 헷갈려서 주로 번호를 이용해서 역을 찾는다. 개선된 노선도에는 역번호와 노선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앞으로는 역 찾기가 좀 더 쉬울 거다.
-디자인 일을 하면서 생긴 직업병이 있다면?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다 보니 조금만 튀어나와 있다든지 줄이 맞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다.(웃음) 오와 열, 각도가 맞아야 한다. 이번 노선도 개선 작업이 그런 성향이 긍정적인 효과로 극대화된 것 같다.
-지하철 노선도 개선 작업을 하시면서 노선도를 많이 봤을 것 같다. 지하철역의 모든 역 이름 과 노선을 다 외웠는지도 궁금하다.
▶내가 명사에 약하다. 간격이나 그림 형태는 금방 외웠는데 불행하게도 모든 역 이름과 노선을 전부 다 외우지 못했다.
-지하철 디자인 노선도 개선 작업을 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개선된 지하철 디자인을 발표한 다음에 생긴 일이다. 부동산 사이트에 지하철 노선도 관련 내용이 아주 크게 올라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투자에는 관심이 없다 보니 그런 관점에서 디자인을 본 적이 없었는데 재밌었다.
-지하철 노선도 개선안을 발표한 이후 기억에 남는 반응은 무엇인가.
▶지하철 노선도에 새롭게 추가된 한강과 2호선 원 모양을 보고 태극 마크 같다고 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아이덴티티가 확실하다고 해주셨다. 또 젊은 분 중에 서울이 힙해지고 영해져서 좋다고 칭찬해 주신 분도 있었다.
-지하철 노선도 디자인을 할 때 미적인 요소만 신경 쓰는 게 아닌 거 같다.
▶그렇다. 다른 디자인 분야에서는 미적인 것만 추구하면 될지 모르겠지만 공공디자인에는 기능이 꼭 들어가야 한다. 편리하고 기능이 있는 상태에서 미적인 게 구현돼야만 '공공 디자인'이다. 또 점선, 실선, 면, 두께를 결정하는 것도 디자이너에겐 큰 숙제다. 그래서 2호선의 선 두께를 결정할 때도 두꺼운 것부터 0.5cm, 0.3cm까지. 세심하게 차이를 보면서 고민했다. (2호선 두께가 두꺼워졌는데) 고심해서 만들어진 두께다. 그리고 호선이 끝나는 지점을 동그라미로 할지, 튀어나오게 할지, 연결선을 그어야 할지 등 보이지 않는 하나하나를 다 연구하고 계산해서 디자인했다.
-지하철 노선도를 발표하면서 굿즈도 함께 발표됐다.
▶굿즈를 사면서 서울에 애정을 더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첫 번째다. 굿즈가 지인에게 주고 싶은 애정템이 됐으면 좋겠다. 굿즈 판매로 서울 지하철 교통공사인 서울메트로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하철 노선도 개선 작업은 서울 시민들, 더 나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라는 생각이 든다.
▶작업 총괄을 맡아 시작할 때 설렜다. 알게 모르게 사명감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즐거웠다. 앞으로 보완해야겠지만 작업한 결과물이 나오니 어느 정도 큰 산을 넘은 느낌이다. 보통 영국 하면 2층 버스가 떠오르고 프랑스하면 에펠탑이 떠오른다. 한 재단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 슬프게도 서울 하면 떠오르는게 없다고 한다. 서울을 상징할 만한 이미지가 없는 거다. 지하철 노선도가 서울의 '아이덴티티'가 되면 좋겠다.
doo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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