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선 조센징, 北선 째포…법정에 선 재일교포북송사업 피해자의 외침"②
[이비슬의 B터뷰]"지상낙원 말에 속아 떠난 북한…43년간 생이별"
북한 상대로 1억엔 손배소…7월 일본 법원 항소심
- 이비슬 기자, 박지혜 기자
(서울=뉴스1) 이비슬 박지혜 기자 = "오래 기다리셨지요?"
뙤약볕이 내리쬐는 서울 광화문 광장. 주한미국대사관을 나선 두 여인이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잠깐씩 묻어나는 북한 말씨는 과거 그들이 떠나온 곳을 짐작게 했다.
가와사키 에이코(81)와 리소라(53). 탈북민이자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인권 활동가. 재일교포북송사업의 피해자. 두 사람을 설명하는 수많은 수식어 중 어느 하나도 순탄한 삶은 아니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은 미국대사관과 우리 통일부 관계자들을 만나 향후 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열흘간 한국에 방문했다고 했다. 그들이 전 세계 각국을 돌며 활동하는 이유는 6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열여덟, 홀로 북한행 배에 올랐다
"사람들이 그토록 이야기하는 지상낙원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고 오겠습니다."
열여덟 고등학생이었던 가와사키 에이코는 부모에게 짧은 작별 인사를 남기고 홀로 북한행 배에 올랐다. 일본 땅을 다시 밟기까지 43년이 걸릴지는 예상하지 못한 채였다.
그는 "북한에선 세금, 교육비, 병원비, 집이 모두 공짜인 데다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며 "도착하기 전날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는 사람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경상도 출신 아버지와 전라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에이코는 천성이 호걸스러운 학생이었다. "솔직히 말해 건방진 성격"이었던 그에게 부모와 학교의 만류는 통하지 않았다. 가난 탓에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뻔한 경험은 그의 북한행 결심을 부추겼다.
에이코는 "내가 떠날 때 북송선 두 척이 함께 갔는데 탑승객 수만 1000명이 넘었을 것"이라며 "재일교포나 교포와 결혼한 일본인 여성이 많이 타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1959년 북한과 일본 주도로 시작된 '재일교포북송사업'은 그렇게 25년간 9만명이 넘는 에이코들을 북한으로 이주시켰다.
◇ "꽃제비 죽어가던 모습에 탈북 결심"
자본주의 맛을 본 재일교포 신분은 순혈주의가 만연한 북한에서 2~3대를 걸쳐 모두 차별의 대상이었다. 일본에서 조센징이라 불린 그는 북한에서는 '째포'(재일교포) 취급을 받았다. 에이코는 담담한 말투로 "나는 일본, 북한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국제고아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말했다.
생계는 냉면과 개장국(보신탕) 식당을 운영하며 꾸려갔다. 그는 북한에서의 수십 년 세월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무엇을 듣고 보아도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되죠. 한마디 잘못한 말을 목숨과 맞바꾸니까."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북한 사회 전반에 대량 아사가 발생하자 에이코는 처음 탈북을 결심한다. 그는 "겨울에 추워서 모여 있던 꽃제비 중 한 명이 죽으면 몸에 있던 이가 사방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머리가 쭈뼛 섰다"고 떠올렸다.
2003년 중국과 인접한 강을 건넌 에이코는 43년 만에 고국 일본으로 향했다. 여생은 재일교포북송사업 피해자들을 위한 인권활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2014년 북한 인권문제의 법적 책임규명을 위한 단체 '모두모이자'를 만들고 대표를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모두모이자는 탈북자와 일본인, 재일교포를 포함한 회원 70여명과 함께 전 세계에 재일교포북송사업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가와사키 에이코 대표는 "북송사업은 조총련과 북한에 의한 인권침해"라며 "일본에서 차별받으며 살 바에 꿈같은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참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말에 속아 많은 재일교포가 북한으로 떠났다"고 강조했다.
◇ "북송사업은 거짓"…7월 日 법원 항소심
재일교포북송사업은 경제 성장 중이던 북한에 노동력 부족 문제를, 일본엔 전후 자국에 거주 중인 한국인 등 생활보조대상자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연간 2억엔의 지원금 부담을 동시에 해결할 방책이었다.
북한과 일본 적십자 간 합의에 따라 1959년 12월14일부터 1984년까지 재일교포 9만3000여명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당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는 사업을 홍보하며 집과 일자리, 무료교육 등을 약속했지만 이주자들이 북한에서 마주한 것은 차별과 경제적 고난이었다.
가와사키 대표는 "2018년 8월 탈북자 5명이 원고로 참여해, 북한 정부가 1인당 1억엔씩 배상하라는 소송을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냈다"며 "북송사업이 거짓이며 잘못됐다는 사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소송 제기 3년 만인 2021년 10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에서 첫 재판이 열렸다. 이듬해 3월 1심 선고 결과는 각하.
일본 법원은 손해배상을 청구할 시효가 지나 피해자들의 권리가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북한에 허위 선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리 국장은 "곧바로 항소했고 다음 달 7일 도쿄고등법원에서 변론재판을 앞두고 있다"며 "활동의 최종 목적지는 일본에서 북송재일교포 사업의 인권구제를 위한 임시법 제정"이라고 설명했다.
◇ 北·日 외면 속 외로운 싸움…"목숨이 모자란다"
내년은 1959년 12월14일 첫 북송선이 일본 니가타항을 출발한 지 65년째 되는 해다. 모두모이자는 미국, 영국, 유럽에서 활동을 알리는 대대적 국제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는 9월 한국에서도 홍보 활동과 국회, 통일부 등에서의 발언을 준비하고 있다.
가와사키 대표는 "이 재판은 북송선을 탔던 재일교포가 살아있을 때 받아야 한다"며 "한 분은 돌아가시고 다른 분들은 건강 문제로 나오지 못하고 있어 재판에 시간이, 목숨이 모자란다"고 말했다.
모두모이자에 따르면 현재 북송재일교포 피해자 수는 일본보다 한국에 더 많다. 한국에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를 통해 진상규명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리 국장은 "부모님이 북송선에 탔다는 사실, 부모님과 가족관계라는 사실을 당사자가 증명해야 해서 진화위 심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북송재일교포의 자녀라는 증명서조차 구할 수 없거니와 한국 법정에선 북한에서 가져온 증명서가 인정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북한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국제고아 처지라고 했던 가와사키 대표의 말이 다시 한번 귓전에 맴돌 무렵 그는 부모의 땅 한국에 짧은 끝인사를 남겼다.
"한국에서도 재일교포는 바다 건너에 있는 한국인일 뿐, 식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북한 인권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저희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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