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고민하는 사회복무요원들…"국가에 복수하고 싶다"

[K요원의 죽음]②"병무청 옥상서 투신하면 재검해 줄까요?"
실태조사서 10명 중 2명이 자해·극단선택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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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박상휘 박혜연 기자

19명.

사회복무요원 최준씨(관련기사: 아들의 7번째 제사상을 차리는 엄마…"막을 수 있었던 죽음")가 스스로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했던 2016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회복무요원의 숫자다. 이후에도 매년 10여명의 사회복무요원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고 있다.

다수의 사회복무요원들은 폭언·폭설을 포함 근무지에서의 부조리,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격무에 시달리는 현실에 매일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사회복무요원을 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자신들이 신체와 영혼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뉴스1은 현직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죽음을 고민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근무지에서의 불이익 등을 감안해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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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망쳐놓은 국가에 복수하고 싶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A씨(26)는 최준씨의 사례와 같이 최초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하지만 훈련소에서 수면장애 등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이상 증상을 보였고 결국 귀가하게 됐다. 복귀 후 재검을 통해 4급 판정을 받았으나 문제는 지원하는 기관마다 선발에서 떨어져 3년 가까이 대기 상태로 지내야 했다는 점이다.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복무를 하고 싶어도 기관 선발에 떨어지면 대기를 해야 한다. 특히 국방부가 2015년 신체검사 규칙을 개정하면서 현역 판정 기준이 높아지자 4급 판정 비율은 높아졌고 복무기관은 한정적이다 보니 다수의 잉여인원이 발생했다. 3년 이상 장기대기로 면제된 사회복무요원 수만 2016년 11명에서 2020년 1만5331명까지 늘었다.

A씨는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했다. 대학 입시에 합격했지만 정신 질환 문제로 진학도 포기했다. 이후 A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군 문제를 해결한 뒤 학업을 다시 이어갈 생각이었으나 3년 가까이 대기를 하다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되면서 "모든 인생 계획이 어그러졌다"고 밝혔다.

A씨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매 순간 질환으로 인한 불편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는 정신적 질환으로 잠을 자기가 어렵고 시간 관리가 되지 않으며 자주 기억이 끊기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내일이 온다는 명백한 사실이 고통스럽다"라며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A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한 지방 도시의 시립도서관에서 근무하던 A씨는 증상이 악화된 지난해 7월부터는 시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는 온갖 잡무에 투입되는 것도 고충이지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주변 공무원들이 자신의 질환과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들은 남들보다 느리고 시간 감각도 없는 A씨가 게으른 것으로 치부했다.

서면 인터뷰에서 A씨는 국가가 자신을 망쳐 놓은 것이라며 "복수하고 싶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문화 제도, 그 외의 모든 것들이 염증이 날 정도로 역겹다"라며 "온전치 못한 상태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로, 국가로부터 희생을 강요받았다. 빼앗긴 20대의 시간을 이 칠흑같이 어두운 끔찍한 시간을 누가 배상해 줄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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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 옥상에서 투신하면 재검해 줄까요?

B씨(32)는 선천적 편측 비대증으로 신체의 좌우가 비대칭적으로 발달하는 질환을 앓고 있다. 하체에서 그 증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 양쪽 다리의 길이가 '약 4㎝' 정도 차이가 난다.

4㎝라는 길이는 B씨에게 매우 중요한 수치다. 양측 다리 길이가 차이 나는 ‘하지의 단축’의 경우 4㎝ 이상이 야지만 신체검사 5급(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 길이의 차이는 측정하는 곳마다 조금씩 달랐다. 종합병원에서 측정한 길이는 4.1㎝가 나왔고 병무청에서는 3.7㎝가 나와 4급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12월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 B씨는 자신이 일을 하며 겪는 불편함에 대해 "한쪽에만 4㎝짜리 깔창을 깔고 하루 종일 다녀 보면 아픈 걸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 사회복무요원으로 맞겨졌던 첫 번째 업무가 노인주야간보호센터에서 치매 노인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몸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 고됐지만 B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휴게시간 미지급, 주말 출근 강요, 개인정보 업무 단독 처리 등의 부조리였다고 했다. 결국 해당 기관은 이런 문제들이 불거져 사회복무요원 배치가 중단됐고 B씨도 다른 기관으로 적을 옮겼다.

아픈 몸으로 근무하는 것이 어려워 다시 병무청 재검사를 받았을 때 길이 차이가 다시 4㎝ 이상이 나왔다. 하지만 중앙병역판정검사소에서 쟀을 때는 3.3㎝가 나와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시 근무를 하고 있다.

B는 자신의 병이 사실상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난 것이라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 뼈를 절단했다 이어 붙이는 방식의 수술도 있었지만 얻게 되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의사의 설득에 포기했다. 하지만 신체가 계속 틀어져 있기 때문에 나이가 먹을수록 몸에 부담은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정신적 어려움도 함께 겪기 시작했다. 잠에 잘들 수 없어 올해부터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B씨는 같은 다리인데 재는 기관에 따라 길이가 오락가락하는 것에 분노했다.

그는 "저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몸은 악화되고 해결은 안 되니, 억울해서 병무청 옥상에서 투신이라도 하면 정형외과 의사들이 제 신체를 부검해서 진실을 밝혀주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64%가 괴롭힘 경험…18%는 '자해·극단적 선택' 고민A씨와 B씨의 사례처럼 몸과 마음이 아픈 와중에 징집돼 갖은 부조리를 겪으면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사회복무요원들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직장갑질119와 공동으로 지난 5월 한 달간 사회복무요원 350여명(소집해제자 23명 포함)을 대상으로 복무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주목할 만한 수치가 나왔다.

응답자 중 64%인 224명이 근무 중에 근무지 내에서 괴롭힘이나 부당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48.9%는 괴롭힘 등의 영향으로 정신적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고 28%는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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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답한 이를 전체 응답자(350명) 기준으로 보정하면 18%가 된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18%의 의미를 두고 '위험한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직장갑질119에서 매년 일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설문을 진행하고 있다. 박 위원은 최근 설문 결과를 기준으로 봤을 때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일반 직장인의 비율은 3.2% 정도인데 사회복무요원의 경우 5.6배에 달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취약한 측면이 있어 일반 군대에 가기 힘들어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된 이들인데 폭력, 폭언, 부조리를 당하다 보니 자존감과 존엄성의 훼손으로 이어지고 이게 우울증 등의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사회복무요원들이 겪는 괴롬힘, 부조리의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 전문가들은 사회복무요원이 '근로자'도 '군인'도 아닌 애매한 신분이기에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시민사회에서는 사회복무요원의 복무 환경개선을 위한 법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음 마지막화에서는 사회복무요원들이 안전한 복무를 위한 법개정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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