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는 물었다…"30년 있었는데 어디를 갑니까"[문래동 소공장]
① '핫플레이스' 문래동 임대료 상승에 밀려나는 소공인들
영등포구 '철공소 1300개 통이전' 발표…"차라리 관둘 것"
- 박혜연 기자, 박상휘 기자, 박동해 기자,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박혜연 박상휘 박동해 이정후 기자 = "나가라고 하면 일을 때려쳐야죠. 어디로 가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2가에서 17년째 부품가공업체를 운영하는 김학기씨(58)는 지난 17일 뉴스1과 만나 철공소 집적지가 이전된다는 소식에 헛웃음을 지었다.
김씨는 올해 초 불경기로 인해 일거리가 줄어들자 한 명 있던 직원도 내보냈다며 문래동에서 쫓겨날 경우 '폐업'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은평구 불광동에 거주하는 그는 "(집단 이전은) 말도 안 된다"며 "거래처가 김포에 있는데 거기도 너무 멀어서 (집에서) 못 다닌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일을 배웠고 26살에 기계 한 대를 들여놓은 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업체를 꾸려왔다. 처음에는 청계천 인근의 도심 제조공단에 있다가 문래동 철공소 집적지가 커지자 더 나은 일거리를 찾아 옮겼다고 했다.
열 평 남짓한 어둡고 좁은 가게 안에 앉아 있는 김씨 옆에는 30년 넘게 그와 함께 해온 낡은 기계가 놓여 있었다. 제작에 들어가는 온갖 금속 부품을 이 기계로 다 가공했다는 김씨는 "고장이 나면 여기 뜯었다 저기 뜯었다 하면서 많이 고쳤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김씨가 폐업하게 되면 자식처럼 아꼈던 기계와도 이별인 셈이다.
◇ 철공소 밀어내고 들어선 카페·음식점…임대료 끌어올려
문래동 철공소 집적지는 2010년대부터 예술인들이 모이는 창작촌으로 이름을 알리면서 유동인구가 많아지자 문래동 2가와 3가를 중심으로 카페와 식당, 주점들이 많이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임대료도 상승했다. 50만원이었던 김씨의 월세도 건물주의 요구로 지난해 말 재계약을 하며 70만원으로 올랐다.
김씨는 "여기는 위치가 조금 안 좋아서 그렇지 어지간한 데는 (월세가) 100만원이다"라며 "(술집과 카페가 들어오면서) 그전에 100만원 했던 가겟세가 지금 180만~200만원이 됐다. (2년 뒤에) 월세를 더 올려달라고 하면 그만두려 한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슬하에 장성한 남매를 두었지만 아직 은퇴를 하기엔 이른 나이라며 미래를 걱정했다. 그는 "지금 58살인데 이 나이에 놀기는 너무 힘들다. 칠십 중반이 넘은 선배들도 아직 공장을 하고 있다"며 "여기서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있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30년째 문래동에서 부품가공업체를 운영하는 우성기계 대표 신창호씨(63)도 "계속 (업체들이) 하나씩 떠나가니까 일 처리하는 것도 힘들고 거래처들이 (문래동에) 안 나오려고 한다. 여기서 처리가 안 되니까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것"이라며 "옛날에 청계천 (제조공단도) 도태돼 여기로 밀려났는데 갑자기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또 (밀려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걱정이 많이 된다"고 토로했다.
◇ 서울 마지막 뿌리산업 중심지…열악해지는 환경에 도태
도금과 가공, 열처리, 용접 등 작업들이 연결돼 있는 제조업 특성상 이 과정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 문래동 철공소 집적지는 서울에 마지막 남은 뿌리산업 중심지로 통했다. 철공소 장인들이 머리만 맞대면 '탱크, 비행기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부영 내공장갖기추진위원장은 "문래동 소공인들이 다들 40~50년 된 장인들이다. 국가적으로 따져도 엄청난 자산"이라며 "대만이나 일본, 중국은 모두 소공인, 소기업의 기술 보호 차원의 공단이나 산단이 다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09년 서울시가 우선정비대상구역으로 지정한 후로 문래동 철공소의 환경은 점점 열악해져가는 실정이다. 공장 증축은커녕 천정이 낮아 대형 기계를 들이기도 어려워졌다. 문래동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업체에서는 "시대가 바뀌면서 이곳도 도태되는 과정"이라고 정리했다.
영등포구는 지난 8일 문래동에 있는 철공소 1279곳을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인근 지역으로 통째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발 압력과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인해 철공소들이 하나둘 문을 닫으며 뿔뿔이 흩어지는 추세가 심화되자 기계금속 집적지라는 이점에서 나오는 '협업 시너지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문래동 1~3가에서는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고 문래동 4가는 지난 4일 재개발사업을 위한 조합 설립을 인가받았다. 영등포구는 실태조사와 함께 철공소 이전 규모와 비용을 추계하고 이전 후보지를 선정할 평가지표 등을 개발하는 용역에 착수했다. 용역이 10월에 완료되면 본격적으로 이전 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 "여기서 나가면 더 갈 데가 없어요"…답답한 소공인들
영등포구 측은 용역 착수 발표 당시 "사전 여론조사를 한 결과 700곳 이상의 업체에서 이전을 찬성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뉴스1이 문래동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소공인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약 1300곳에 달하는 철공소가 한꺼번에 이전할 만한 부지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최소 4~5년씩 걸리는 이전 사업을 기다리다가 그 전에 고령이라는 신체적 한계 또는 임대료 상승 압박을 못 견디고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존 거래처와 거래가 끊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한진금형 대표 김상덕씨(74)는 "(이전 사업이) 언제 될지 모른다. 발표한다고 다 되나"라고 회의를 드러내며 "원래 대방동에 30년 있었는데 거기도 다 철거됐다. 거기서도 밀려서 나왔는데 여기서 나가면 더 갈 데가 없다"고 전했다.
문래동에서 34년 일했다는 우진정밀조각 대표 김영복씨(64)는 "아마 철공소들 거의 (이사를) 안 가려고 할 것"이라며 "아파트형 공장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거기는 관리비가 있어서 여기 임대료보다 비쌀 수도 있다. 여기 문래동 사람들 중에는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화성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문래동에 종종 외주를 맡기러 온다는 오기태씨(56)도 부지가 마련될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봤다. 오씨는 "화성도 작은 공장들이 막 이사를 와서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바람에 아침에 수원에서 출근하려면 1시간씩 걸린다"며 "시흥도 과림동 일대가 신도시로 개발된다고 공사를 하고 있는데 기존에 있던 공단이 갈 데가 없다. 공간을 만들어 분양한다고 해도 다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수용(공간)이 안 된다"고 말했다.
기계 제작과 용접 일을 하는 윤진공업사 대표 김종철씨(65)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다 (이전을) 싫어할 것"이라며 "(이전하면) 일거리가 있다는 보장이 있느냐. 거기 가면 지금 하던 (일거리가) 그냥 뚝 떨어지느냐.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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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8일 서울 영등포구는 1200곳이 넘는 '문래동 철공소'를 통째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래동 철공소는 사실상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은 금속가공제작 집적지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장인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나 임대료 상승과 개발 압력 등으로 지속적인 이주 압박을 받다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운명까지 마주하게 된 것이다. 뉴스1은 40여년간 문래동에서 일을 해온 소상공인들의 사연과 철공소 이전의 직접전 원인인 젠트리피게이션, 또 통째 이전은 실제로 가능한지 3편의 기획물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