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영의 쫌아는 언니] '죽음 바로 옆의 삶'을 보다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정권 붕괴 후 카불 공항에서 탈출 시민들이 여객기를 타고 있다. ⓒ AFP=뉴스1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정권 붕괴 후 카불 공항에서 탈출 시민들이 여객기를 타고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안은영 작가 = 나라에서 준 대체휴가를 찾아먹기 위해 암팡지게 놀고먹었다. 교교한 밤의 숲을 걸었고 동트는 산정에서 꿀맛 커피를 마셨다. 종일 늦여름의 자취를 좇아 쏘다니다가 집에 돌아온 밤, 리모컨을 손에 들고 소파에 몸을 널었다. 생각 없는 영화를 고르고 싶었는데 마음은 자꾸 ‘더 파더’에서 덜커덕거렸다. 흥에 취했던 연휴를 차분히 마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는 프랑스 최고 희곡작가인 플로리앙 젤레르의 가족 3부작(‘더 파더’ ‘더 마더’ ‘더 선’) 가운데 하나로,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일단 희곡작가의 입봉작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만듦새가 좋다. 안소니 홉킨스라는 거목에 압도당하기는커녕 칼자루를 팽팽하게 쥐고 극을 이끈 덕에 올 초 제93회 아카데미는 이 영화에 각색상과 남우주연상을 안겼다.

‘치매노인의 불안’이라는 심상한 주제는 시트콤이 됐다가 스릴러가 됐다가 결국 내 안으로 들어와 다큐멘터리가 된다. 치매노인‘이’ 바라보는 세계와 치매노인‘을’ 바라보는 세계가 양립하고 이 둘의 경계에서 아버지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와 딸 앤(올리비아 콜맨)의 시선은 신랄하고 애틋하다. 영화 중간 즈음 안소니가 망중한에 잠기는 장면에서 나도 정지 버튼을 눌렀다.

물 한잔을 마시러 일어서는데 핸드폰의 뉴스 알림 액정이 깜박인다. 탈레반에 점령당한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 관한 뉴스다. 대통령은 도망쳤고 도시는 탈레반의 단두대가 됐으며 국민들은 두 가지의 선택지를 남겨놓고 있다. 바닥없는 절망에 빠지거나 필사적으로 도망치거나. 부패하고 무능력한 정부를 믿은 죄로 시민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아이러니는 동서고금을 통해 반복되는 뼈아픈 데자뷰다. 뉴스를 훑다보면 한정 없을 것 같아 서둘러 영화를 재생했다.

런던의 고급아파트에서 노년을 즐기(는 줄 알)던 안소니는 딸과 도우미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위와 낯선 남자를 혼동하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지 않는다. 삶의 대부분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안소니의 유일한 신념은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 뿐이다.

차츰 모든 기억을 잃어가는 안소니가 병상에 걸터앉아 우는 마지막 장면은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썼다. “…내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져버리는 것 같소. 도대체 지금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요?…” 아카데미가 각색상과 남우주연상 수여의 변을 대신해도 좋았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지극히 통속적이고 압도적인 장면이 아니었을까.

현실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장면. 철수하는 미군의 군용기에 생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몸부림은 어떤가. 누군가의 손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그 아래 몇 겹의 사람들이 활주로에 곤두박질칠 위험천만한 장면은 그 자체로 ‘죽음 바로 옆의 삶’이었다. 안소니 홉킨스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놔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절망적이어서 한참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분노와 슬픔이 밀려 들었다. 영화는 현실을 베껴낼 뿐이지만 현실은 그 어떤 비극보다 고통스럽고 무기력하며 통속적이고 무한하다. / 안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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