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로 보낼 수 없어" 보육원 친구들은 '생애 첫 2일장' 치렀다
[스물넷 청년의 죽음①] 원장 성씨 딴 보육원생 백씨 20명 갹출
친구들 모두 서툰 장례식…"가족 없는 설움이 이리 큰 걸까요"
- 박동해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백동민씨(가명·24)는 지난 5월13일 오후 7시쯤 강화 삼산면의 한 펜션에서 또래의 여성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됐다. 시신 주변에는 그들이 죽음을 결심하기 전 비웠던 소주병이 뒹굴고 있었다. 퇴실 시간을 넘어서도 나오지 않는 손님들을 이상하게 여긴 펜션 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고 부검결과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인은 질소중독이었다.
백민경씨(가명·24·여)가 친구인 동민씨의 죽음을 전해 들은 것은 이튿날 정오쯤이었다. 전화를 건 상대는 "놀라지 말고 들어"라며 동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는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민경씨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소식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기억 속에 '동민이'는 항상 웃는 얼굴에 건강하고 씩씩한 친구였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시신이 안치된 강화도의 한 장례식장에 도착한 민경씨는 신원 확인을 위해 동민씨 시신을 마주했을 때도 이 죽음이 현실 같아 보이지 않았다. 보랏빛으로 물든 낯빛과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한 입술은 동민씨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하얀색 커다란 나이키 신발이 보였다.
시신 옆에 신발이 왜 놓여 있었는지 알지 못했지만 민경씨는 키도 크고 손도 크고 발도 컸던 동민씨 신발이 항상 머리에 남아 있었다. 그런 '브랜드 있고 예쁜 신발'들을 동민씨는 참 좋아했었다. 동민씨의 죽음이 실감이 나자 민경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민경과 동민. 만 스물넷의 두 청년은 '가족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1997년생 같은 나이의 민경씨와 동민씨는 둘 다 부모로부터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다. 보육원 원장의 성을 따 '백'이라는 성씨를 물려받았다. 그렇기에 이 둘은 '부모 없는 것에 대한 서러움'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시신을 확인한 민경씨는 보육원 출신 친구들에게 동민씨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연락을 돌렸다. 처음에는 아무도 동민씨의 죽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민경씨가 그랬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민경씨가 장례식장의 사진을 보내주고 나서야 친구들은 죽음을 받아들였다.
처음 신원을 확인할 때부터 염을 할 때까지 민경씨는 모두 4번 동민씨의 시신 앞에 섰다. 친구의 모습이 점점 차가워지고 검게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부모라도 있었으면 장례가 이렇게 늦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민경씨는 친구의 시신 앞에서 가족이 없는 것의 서러움을 또 느꼈다.
얼른 장례를 치르고 동민을 보내주고 싶었지만 20대 초반, 가족이라곤 없는 보육원 출신의 청년들에게는 누군가의 장례에 와보는 것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동민씨는 가족도 친지도 없었기 때문에 '무연고 시신'으로 기록에 남았다.
민경씨와 동민씨가 교육을 받았던 화성청소년창업비전센터(비전센터)의 센터장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 구청을 통해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면 일정 부분 장례비를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를 민경씨와 친구들에게 전해줬다.
이에 동민씨의 친구들은 무연고 장례를 치르고 화장을 한 뒤 유골을 산골 하려고 했지만 동민씨가 최종적으로 연고가 없음을 확인하는 문서가 발급돼 장례식장으로 넘어오는 것이 지연됐고 주말이 겹치면서 화장장 예약이 미뤄졌다. 이후 하나둘 동민씨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모이면서 '평생 혼자 지낸 동민이를 장례식도 없이 혼자 보낼 수는 없다'고 의견이 모였다. 결국 20명 정도 보육원 출신의 친구들이 각자 돈을 모아 동민씨의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장례식장에 모인 친구들 중 누구도 가족이 없었기에 서로가 동민씨의 가족이 됐다. 빈소에는 상주로 백상현, 백성준, 백정기, 백현준(모두 가명)의 이름이 올랐다. 같은 보육원 출신이라 같은 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얼핏 보면 정말 가족이 상주를 맡은 것으로 보였다.
장례는 사실 정식적인 장례라고 보기 어려웠다. 비용을 다 낼 수 없어서 24시간만 빈소를 꾸렸고 음식도 따로 제공하지 않았다. 죽음을 애도하는 화환은 4개만 왔다. 두개는 동민씨가 취업을 하기 전에 다녔던 비전센터와 선생님들이, 나머지 두개는 백00, 백00. 보육원 친구들이 보낸 것이었다. 장례가 진행된 15일, 16일 빈소가 마련된 강화도에는 줄곧 비가 내렸다. 민경씨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동민이가 친구들을 보며 우는 건가'하고 생각이 들었다.
조문객은 대부분 동민씨와 함께 보육원을 나왔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비전센터 선생님과 동민씨가 일을 하며 알게 된 친구들까지 40명 정도였다.
상주를 맡은 동민씨의 친구들에게 장례는 낯설었다. 조문객이 오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조문객으로 찾아오는 다른 보육원 출신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비전센터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잡고 절을 하는 법, 향을 피우는 법, 조화를 놓는 법을 알려줬다.
만 하루의 장례식이 끝나고 냉동고에 들어가 있던 동민씨의 시신은 6일 만인 18일 화장이 됐다. 유골을 안치할 곳을 찾던 민경씨와 친구들은 제천 지역의 한 납골당을 선택했다. 보육원을 싫어했지만 그곳이 동민씨와 친구들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비용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저렴한 곳을 골랐지만 납골당 안치단은 층마다 비용이 달랐다. 친구들끼리 모은 돈으로는 안치단 가장 아래층 자리만 고를 수 있었다. 동민씨를 차가운 바닥에 두고 싶지 않았지만 한단을 올릴 때마다 몇십만원씩 가격 차이가 났다. 동민씨의 친구들이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비전센터 교사 6명이 돈을 모아 지원하기로 했다. 그렇게 동민씨의 유골함은 안치단 3층에 올랐다.
제일 먼저 동민씨의 시신을 확인했던 민경씨는 납골함이 안치되는 날에는 출근을 해야 해 제천에 함께 가지 못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동민씨의 장례를 치러줄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뿌듯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되겠지만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보육원 친구들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장례를 마치고도 민경씨는 동민씨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동민씨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마다 민경씨는 "그럴 애가 아니었는데"라는 말을 몇번이고 반복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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