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바꿔놓은 '을'(乙)의 연대…노동계 새로운 변화
익명 카톡으로 직장 갑질 고발…공감·연대로 발전
투쟁 끝에 노동자 지위 인정받은 택배기사들
- 김다혜 기자
(서울=뉴스1) 김다혜 기자 = 을이 갑을 일대일로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헌법은 노동3권을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한다. 힘을 모아 단결하고, 교섭하고, 행동해 권리를 찾으란 취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동자 10명 중 9명은 이 울타리 밖에 있다. 2016년 기준 노조가입률은 9.8%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비정규직만 따지면 1.7%에 불과하다.
촛불집회의 열기가 이어졌던 2017년, 을들의 연대는 그 외연을 넓혔다. 노조에 속하지 않던 사람들은 개별 회사의 장벽을 넘어 뭉치면서 변화를 만들었다.
◇ 혼자 삭히던 한숨…갑질 대응해 '카톡'으로 연대
지난 11월1일 출범한 '직장갑질119'의 온라인 고발운동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간호사에 선정적 춤을 강요하는 등 논란으로 세상에 알려진 한림성심병원이 대표적이다.
"이런 것도 갑질 맞나요?" 누군가 단체카톡방에 글을 올리면 비슷한 고충을 겪은 사람은 공감과 응원을, 241명의 노동전문가 스태프들은 법률적 조언과 상담을 제공했다.
직장갑질119 측은 "한 곳에 모여 일하지 않는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면서 사업장을 중심으로 노조를 만드는 일이 어려워졌다"고 온라인 운동의 취지를 설명했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보장된 익명성과 별도 가입절차가 없는 편리함은 폭발적인 문제제기와 폭로를 끌어냈다. 첫달에만 2021건의 '갑질' 제보가 쏟아졌다.
스태프들은 동종업계 종사자들이 함께 자료를 모아 업계의 부당관행을 고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직종별 모임, 노조 설립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실제 단톡방에서 시작된 한림대병원 노동자들의 모임은 조합원 1000명대 오프라인 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 온라인을 매개로 오프라인 연대를 만든 대표적 사례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스태프는 "저희는 플랫폼을 만들었을 뿐인데 많은 분이 '우리가 당한 갑질을 세상에 알려보자' 용기를 내줬다"며 성공비결로 '촛불의 힘'을 꼽았다.
촛불을 들고 부정한 권력을 바꿔낸 경험이 내 일터의 부당함을 바꾸기 위해 나서는 용기로 이어졌단 설명이다.
박 스태프는 직장119 단톡방은 "노조가 있었다면 당하지 않았을지 모르는 갑질을 당한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공감과 용기,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작은 공간 같다"고 말했다.
◇ 노숙농성 끝에 "노동자 맞다" 인정받은 택배기사들
진즉부터 부당한 업계 관행을 바꿔보겠다며 노조를 만들었지만 노조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들도 있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온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노동자)들이다.
택배기사나 보험설계사 등 특고노동자들은 회사를 위해 일하면서도 외견상 독립된 사업자로 구분됐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노조설립도 불가능했다.
택배기사들은 통상 하루 200여개의 물량을 소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분당 1개를 배송한다 치면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다보니 산업재해도 잦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5년 택배업의 재해율은 국내 산업 전체 평균보다 약 3배 높았다. 하지만 산재보험 가입자는 19.6% 수준에 불과하다.
택배노동자들은 지난 8월 말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노조 설립신고를 한 뒤 신고증 발급(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그 앞에서 두달여 간 노숙농성을 벌였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 위원장은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단결해 어려움을 공론화고 박탈당했던 권리를 되찾으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마침내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3일 택배노조에 설립신고증을 교부했다. 정부가 최초로 택배기사가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는 단체행동권과 단체협약체결권을 확보하게 됐다. 택배노조는 "택배노동자들의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더 힘있게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 글로벌대기업 '맥도날드'와 단체교섭한 알바노조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조합인 알바노조는 지난 6월 처음으로 글로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맥도날드와 임금과 처우 결정을 위한 단체교섭을 시작했다.
교섭 시작 당시 알바노조는 맥도날드 노동자인 조합원 10여명중 1명의 신원을 사측에 공개하고 교섭을 추진, 교섭대표 노조 지위를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알바노조는 시급인상, 휴식시간 유급화, 안전장비 지급,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알바노조는 상견례를 포함해 7차례 맥도날드와 단체교섭을 진행했지만 지난 10월 교섭 결렬을 선언한 상태다. 교섭조건 등에 대한 의견차가 원인이 됐다.
그럼에도 소수 근로자를 조합원으로 둔 알바노조가 해당 대기업과 단체교섭을 벌였던 것은 의미가 크다. 맥도날드 전체 직원은 2015년 기준 1만8000여명이다.
근속기간이 짧고 사업장 당 노동자 수가 적은 아르바이트 노동 특성상, 같은 사업장 내에서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노조를 꾸리기 어려운데 알바노조는 이를 극복한 셈이다.
'아르바이트'라는 고용형태를 공통분모로 사업장·업종을 넘어 연대하는 구조인 알바노조는 맥도날드 교섭을 계기로 활동영역을 확장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가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국가에 등록된 공인 노조이지만 기업들은 대부분 무시했다"며 "2014년부터 꾸준히 노력한 결과 맥도날드와 교섭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을들의 연대가 강화되는 것과 관련해 "예전에는 최저임금, 주휴수당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노동법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며 "권리를 알게되니 문제제기도 활발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d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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