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열기? ‘담배 연기’ 자욱…국회, 무법지대 방치
한국 금연구역 1호인데…국회 본관 앞에서도 '뻐끔뻐끔'
민원 쏟아지는데…구청은 '단속뿐' vs 국회는 '문제없다'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역설적이죠. 법을 만든다는 입법기관에서 대놓고 법을 무시하잖아요. 다른 공원을 가도 이런 곳은 없어요."
16일 세살배기 아들과 국회로 산책을 나왔다는 서모씨(33·여)는 사방에서 퍼지는 담배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국정감사 3일 차에 접어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금융위원회·관세청·문화재청 등 26개 피감기관과 수백명의 관계자들이 열띤 감사를 벌이는 사이 국회 바깥에서도 후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금연 경고 표지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회 곳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흡연 무법자'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 때문이다.
국회 내 잔디밭과 벤치, 건물 곳곳에는 흡연을 금지하는 '금연 경고문'이 부착됐지만 국회를 오가는 직원과 시민들은 오히려 금연 경고 표지판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기도 했다.
금연 경고 스티커가 부착된 옥외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남성을 피해 손사래 치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점심시간에는 담배를 입에 물고 걸어 다니며 피우는 이른바 '길빵'도 부지기수"라며 "국회 내 무단 흡연문제는 365일 진행 중"이라고 토로했다.
◇ 국회 본관 앞에서도 뻐끔뻐끔…고충 민원 쏟아져
오후 1시 국회 바깥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국회로 들어오는 관계자들과 시민들 손에 하얀 담배가 들려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일부 남성 무리는 국회 잔디밭에 가을 소풍을 나온 유아들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지만 담배를 입에 물고 유유히 이들을 가로질러 담배 연기를 내뱉기도 했다.
잔디밭 한쪽 구석에는 흡연전용 항아리까지 등장했다. 국회 관계자나 국회를 방문한 시민들은 항아리 앞에 모여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
항아리 옆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한 남성은 "여기가 흡연구역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다들 여기서 피우니까 와서 피웠다"며 은근슬쩍 자리를 피했지만 채 5m도 되지 않는 거리에 보행로가 있는 '금연구역'이다.
'불법 흡연 항아리'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오히려 양반이다. 국회 본관 현관문 앞에는 보란 듯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 일부 국회 관계자는 '흡연시 과태로 10만원'이라고 쓰인 표지판 앞에 종이컵을 가져다 두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연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제4항 제1호에서는 '국회의 청사'를 금연구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법률상 국회의사당 전역이 금연구역임에도 법률이 통하지 않는 '흡연 무법지대'가 된 셈이다.
이에 따라 국회 내 무단 흡연을 성토하는 민원도 잇따르고 있다. 국회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익명게시판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무단 흡연자를 비판하는 글이 이어졌다.
한 익명의 관계자는 '야간에 회관 실내 흡연 문제가 심각하다'고 호소하면서 '일부 건물 복도는 담배 안개로 자욱한데도 구청에서 나오는 단속 효과는 일시적'이라며 국회사무처에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 관계자라고 밝힌 한 남성은 "국회 전역에서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우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너무 대놓고 피우시는 분들에게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는 '계도'는 가끔 하고 있지만 사실 같은 직원에게 제재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민원 쏟아지는데…구청 '단속이 전부' vs 국회 '문제없다'
국회 내 무단 흡연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담당 기구인 국회사무처와 영등포구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국회 내 무단흡연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부서인 영등포구청 보건지원과 관계자는 "국회 내 무단흡연 문제는 항상 있었던 문제"라며 "특히 국회 인근에 어린이집 등 유아시설도 있는 탓에 무단흡연 문제를 지적하는 민원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지만 이따금 나가는 흡연 단속 외에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구청에 따르면 국회 흡연 단속은 2인 1조로 구성된 단속 직원 2개조(4명)가 2주에 1번씩 1시간~1시간30분가량 단속하는 것이 전부다.
구청 관계자는 "과태료라고 해서 흡연이 불법도 아니고 단속을 나갔을 때 보이는 흡연자를 단속하는 게 현재로서 할 수 있는 전부"라며 "의원회관 등 건물의 경우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단속을 나가면 평균 10~15건의 흡연 적발을 하고 과태료를 부과하지만, 사실 단속도 사진이나 동영상 등 '증거'가 필요하기 때문에 눈으로 흡연장면을 목격해도 증거를 남기지 못해 놓치는 경우까지 합치면 위반 사례는 더 많다"고 덧붙였다.
국회 내 민원을 수렴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국회사무처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한 사무처 관계자는 "근무하는 동안 국회 내 흡연문제를 호소하는 민원은 한 차례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일부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있지만 구청 외에는 흡연을 제재할 권리도 없어 손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국회에서 2년 가까이 경비작전을 수행한 한 의무경찰은 "흡연 부스가 너무 적다는 불만을 종종 듣는다"며 "넓은 국회 안에 공식적인 옥외 흡연구역은 본관 좌측에 설치된 흡연부스 한 군데뿐이라는 점이 무단흡연을 조장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33만580㎡(10만 평)에 달하는 국회 내 공식 흡연구역은 국회 본관 좌측 기자 출입구에 위치한 흡연 부스가 유일하다. 비공식적으로 국회 본관과 의원회관 옥상에 각각 흡연공간을 설치했지만 야외에서 합법적으로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한 곳의 흡연 부스만 사용해야 한다. 국회 정문에서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500m가 넘는 거리다.
하지만 역시 사무처는 "더 이상의 흡연공간 마련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사무처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국회 전역이 금연공간인 데다 흡연자보다 비흡연자가 더 많다"며 "별도로 흡연 부스를 증설할 계획도 여력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시적인 단속에 의존하는 구청과 '문제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국회사무처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국회 안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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