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 후보자' 이초미씨 "'아버지' 천 번 부르고 싶다"
생사확인 후보자 250명 중 한 명 "15억 로또 맞은 기분"
"이복동생이라도 만나보고 아버지 느끼고 싶어"
이초미 할머니(70)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깊은 한 숨을 내쉰 뒤 할머니는 "배우도 아닌데 아버지라는 말만 들으면 10초도 안되서 눈물이 나. 만약에 이번에 이복동생이라도 만나게 되면 아버지라는 소리를 한 천 번 해봤으면 좋겠어"라고 말을 이었다.
6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자택에서 만난 이 할머니는 1·4 후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할머니 나이 7살 때였다.
아버지는 친척집이 있는 대구로 가족을 내려보내고 뒷처리를 위해 서울에 남았다. 퇴근 길 태극당 빵을 사와 딸의 양손에 한아름 안겨주시곤 하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전쟁 중 북으로 끌려갔다.
아버지와 생이별 뒤 할머니는 서러운 세월을 보냈다.
"어렸을 때 박수자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깜짝 놀라는 일이 있어도 '아버지', 가다가 어디에 부딪혀도 '아버지'라고 외치곤 했었어. 그 친구는 아무 생각없이 하는 말이었겠지만 아버지가 안 계신 나로서는 그 친구가 괜히 밉더라고. 그래서 그 친구랑 말도 안했어"
아버지를 끌고간 북한이 미웠던 할머니는 1980년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상봉 희망자 접수를 시작했을 때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마음이 엇나가 '신청해봐라. 이북 것들이 나오나' 생각하며 몇 해 동안 신청을 안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를 찾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았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살아서 나를 찾는데 내가 신청을 안하면 안되지 않겠느냐는 판단 때문에 생각을 고쳤다.
1997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버지 소식이 들려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오촌 아저씨가 있는데 미국 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우리나라에서 카이스트에 취직을 시켜준다고 불렀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신원조회를 해보고 그 아저씨한테 '매형이 이북에 살아계신 것 알고 있느냐'고 했다고 하더라고"
당시 아버지 나이 83세, 아직 살아계신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아버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번번이 상봉 대상자에서 제외됐다.
상봉 대상자는 이산가족 수십만명 중 중 추첨을 통해 1차로 500명을 뽑고 그 중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분 등 250명을 2차로 추린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생사 등을 확인해 250명 중 100명이 최종 대상자로 선정된다. 1000:1이 넘는 경쟁률 앞에서 할머니는 매번 좌절해야 했다.
할머니는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점이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생사라도 확인되면 어머니 납골당 옆에 아버지 위패라도 모실텐데 그 마저도 어려워 애만 태우고 있다. 북한에 몇 조씩 퍼주면서도 아무것도 받아내지 못할 바에는 우리 이산가족 생사라도, 그 명단이라도 받아다 줬으면 좋겠다"는 게 할머니 생각이다.
이번에 생사확인 대상자 250명 안에 든 할머니는 "그래서 요즘은 구름 위에 붕붕 뜬 것 같은 기분"이라며 "15억원 로또 맞은 것과 비슷한 기분"이라고 빗댔다.
할머니는 "아버지 나이가 올해 99세라 솔직히 살아계실 것이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아버지가 적어도 83살까지는 살아계셨으니 그 쪽에서 동생들을 낳고 하시지 않았겠느냐"며 "만날 수 있다면 이복동생들이라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만약 가게 돼서 만나면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하고 싶으시냐는 물음에 "동생들을 만나면 아마 아무말도 못하고 기절을 할 것 같다"며 "기절하더라도 거기서 기절하고 싶다"고 말하는 할머니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인터뷰 말미 친동생도 아닌 이복동생인데도 그렇게 보고 싶으시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답했다.
"걔네를 보면 아버지를 보는 마음이 들 것 같아. 얼굴보고 찾으라고 하면 내가 찾아낼 걸. 아버지 아들이나 딸이 있다면 나하고 뭐가 같더라도 같겠지. 만나서 아버지를 마음껏 불러보고 싶어"
긴 세월 할머니가 겪었을 서러움과 간절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할머니는 "이번 추석이 살아오면서 가장 특별한 추석이 될 것 같다"면서도 "천국 아니면 지옥이 되겠지 뭐"라고 푸념하셨다.
그러면서도 "좋은 추석이 됐으면 좋겠는데"라고 나지막이 되뇌이셨다.
한 시간 반여 이어진 인터뷰는 "금강산에서 꼭 보자"는 약속과 함께 마무리됐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쏙 빼 닮은 동생들과 나란히 서 계시는 모습을 예쁘게 찍어주겠노라고, 할머니댁에 같이 있었던 사진부 선배기자도 약속했다.
우리 측이 북한으로 보낸 우리쪽 이산가족 생사확인 후보자 250명에 대한 북한의 답변서는 13일 도착할 예정이다. 이 명단을 토대로 최종 대상자 100명의 명단 발표는 16일 이뤄진다.
hw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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