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잇딴 기자회견·시국선언…이유는?
'사안의 중대성' 대학생들 모이게 해
대선 겪으며 '정치화'된 학생들 '정치현안' 관심
각 대학에서 이를 규탄하는 대학생들의 기자회견과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포문은 서울대가 열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20일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과 경찰의 축소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재학생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대생들은 "'국정원 사태' 관련자를 엄정하게 처벌하고 권력기관의 간섭없는 민주주의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이화여대 총학도 같은 날 낮 12시 서울 서대문구 이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숙명여대는 20일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시국선언문을 게시했다. 서울지역대학생연합은 22일 낮 12시 경희대, 동국대, 성공회대 등 6개 대학 총학과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동시다발적' 이유는 '사안의 중대성', 촉매는 '스마트폰'
서울대 총학 주도로 20일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는 서울대 재학생 100여명이 참석했다. 예상을 웃도는 수치였다.
김형래 총학생회장(24)도 "사실 오늘 행사에 이렇게 많은 재학생이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 못했다"며 놀라워했다.
서울대 총학 관계자는 "당초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SNU)를 통해 '국정원 사태'에 대한 집단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어 총학이 이번 기자회견을 준비한 것"이라며 "그러나 게시판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아 현장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나올 줄 몰랐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장에서 만난 사범대 4학년 김찬영씨는 "학내 커뮤니티에서도 '기자회견이나 시국선언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는 글이 많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공권력이 선거에 개입하는 건 민주주의 국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현장에 왔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평소 스마트폰을 이용해 뉴스를 자주 보다가 국정원 선거 개입에 관한 기사를 보고 분노를 느꼈다"며 "사안이 워낙 중대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에 나와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시험기간이지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들렸다던 국사학과 함지웅씨(24)도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일행 4명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는 그는 "평소 카카오톡 채팅창을 통해 정치이야기를 친구들과 하곤 하는데 이슈별로 의견이 갈리지만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모두 같은 생각이라 친구들과 함께 발걸음했다"고 말했다.
이날 학내 온라인 게시판에 시국선언문을 올린 박명은 숙명여대 회장도 "수사축소, 은폐 등 정황이 포착됐고 경찰 등 양심고백이 이어지고 있어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 사안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며 "시험기간이라 오프라인에서의 행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학생들이 SNS, 커뮤니티 등을 통해 많은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스마트폰과 SNS가 촉매가 돼 이번 '동시다발적' 기자회견을 이끌어 냈다. SNS 등이 '공론의 장' 역할을 해 그간 취업, 등록금 등 개인적 문제에 주로 관심을 가졌던 학생들이 정치적 현안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송해룡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20세기에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매스미디어와 더불어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이 발전해 '사회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라며 "'송신자'가 많아졌고 그런 부분에서 소셜미디어가 법치국가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현안에 '급관심' 아닌 꾸준한 '정치화' 결과
그러나 온라인과 SNS의 발전이 최근들어 급격히 이뤄진 건 아니다. 이들 미디어가 이번 '동시다발적' 기자회견 등에 있어 결정적 촉매라고 특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이택광 문화평론가겸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SNS 등 발전과 더불어 대학생들이 꾸준히 '정치화'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이 있기 전에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고 보긴 어렵다"며 "작년 선거를 거치면서 팟캐스트, 1인미디어 등을 통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굉장히 '정치화'됐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흩어져 있던 학생들의 정치의식이 '국정원 사태'라는 사안을 구심점으로 다시 모이고 있는 것"이라며 "시국선언이라든지 하는 방식이 1980년대 방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1980년대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화 요구가 높아지고 적극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국정원 사태에 대해 명명백백히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지 은폐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제2의 촛불사태가 될 것"이라며 "현 정부에 그 후폭풍이 미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대학 조심스러운 접근…"뭐가 달라지나" 의견도
당초 20일 시국선언에 동참하기로 했던 연세대학교 총학 측은 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지 않았다.
고은천 연세대 총학생회장은 "머지않아 시국선언은 하겠지만 정치적 내용을 철저히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고 회장은 "당초 시국선언을 계획했던 이유는 선열이 피흘려 만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였다"며 "이를 부추기며 학생들과 20대를 도구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시국선언과 분리하려고 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국선언이라는 단어를 택한 건 민주주의의 의미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 것"이라며 "대외적 '알리기용'이 아닌 학내 구성원들에게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하면 잘 알릴 지 고심 중"이라고 덧붙였다.
성균관대 총학 측도 시국선언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려대, 건국대 등 다른 대학들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도 시국선언을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이들 대학의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학우들의 의견부터 확인한 후 시국선언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며 "아직 판결이 안난 사안을 가지고 시국선언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시국선언을 하는데 반대하는 의견들로 찬반이 갈리고 있다.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시국선언문을 본 숙명여대 인문학부 김모씨(22)는 "시국선언 등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단지 참여한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 같지 않다"며 "지난 번에도 시국선언을 했지만 그 이후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hw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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