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시한폭탄' 빙하호 9년 새 1362개↑…뜨거운 히말라야의 연쇄재난
히말라야 기온 10년마다 최대 0.6도↑…영구동토층 녹아 사면 불안정
히말라야 빙하호 붕괴홍수 388건·네팔 54건…하류 인구·시설 위험
-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년설 덮인 산 위에서부터 집채만 한 '물벼락'이 쏟아졌다. 25만명이 고립됐고, 실종자는 1500명을 넘었다.
이번 네팔 대형 돌발홍수는 기후변화가 고산지역 재난의 양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직접적인 원인을 기후변화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기온 상승으로 히말라야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빙하호가 늘고 빙하·암석사태와 산사태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위험은 커지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상류의 얼음과 암석이 무너지면서 물길을 막았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방식의 돌발홍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위험은 네팔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히말라야와 인접한 고산지역 전반에서 빙하가 녹고 빙하호가 늘면서 잠재적인 붕괴 위험도 커지고 있다. 히말라야-카라코람 지역의 빙하호는 2008년 4136개에서 2017년 5498개로 9년 만에 1362개 늘었다. 빙하가 녹으면서 새로운 빙하호가 생기거나 기존 호수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 위에 저장된 물이 늘어나는 동시에, 한꺼번에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 '물폭탄'도 많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번 재난의 발생 과정은 아직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현재까지 제기된 가능성 가운데 하나는 고산지대에서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면서 하천을 일시적으로 막은 뒤, 이른바 '임시 댐'이 붕괴해 물과 토사, 암석이 한꺼번에 하류를 덮쳤다는 것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사고 직후 관측된 신호를 처음에는 규모 4.4 지진으로 분석했지만 이후 실제 지진은 없었다고 정정했다. 위성사진과 지진파를 다시 분석한 결과 대규모 빙하와 암석이 무너지는 과정 자체가 규모 5.2 지진에 해당하는 수준의 신호를 만든 것으로 봤다. 이번 재난이 지진으로 촉발됐다기보다 고산지대의 대규모 '암빙사태'(rock-ice avalanche)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해발 5200m 고지에서 거대한 빙하 덩어리가 무너져 내렸고 이 얼음과 바위가 강을 막아 일종의 '임시 댐'을 만들었다"고 추정했다. 대니얼 슈거 캐나다 캘거리대 교수도 위성영상을 토대로 해발 약 5200m 지점의 폭 610m 규모 빙하·암석 덩어리가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떨어진 것으로 봤다.
이런 빙하 불안정을 키우는 배경에는 히말라야 일대의 빠른 기온 상승이 있다.
학술지 'npj 자연재해(npj Natural Hazards)'에 실린 '온난화되는 히말라야-카라코람 지역의 빙하호와 빙하호 붕괴홍수(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에 따르면 이 지역의 기온은 10년당 0.15~0.60도씩 상승했다.
이 같은 온난화는 빙하를 빠르게 녹여 새로운 빙하호를 만들거나 기존 호수를 넓히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1990년 이후 빙하호 수는 53%, 면적은 51%, 부피는 48%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히말라야-카라코람 지역에서 확인된 빙하호 역시 2008년 4136개에서 2017년 5498개로 늘었다.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물이 산 위에 계속 쌓이고 있는 것이다.
고산지역의 홍수는 기존 빙하호의 자연댐이 터지는 전형적인 빙하호 붕괴홍수 뿐 아니라, 이번처럼 빙하와 암석이 무너져 하천을 일시적으로 막았다가 이 '임시 댐'이 터지는 방식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산사태나 얼음사태가 기존 빙하호에 떨어져 물을 넘치게 하는 과정까지 더해질 수 있다.
영구동토층까지 녹으면서 사면이 불안정해지면 산사태와 얼음사태가 빙하호를 자극하고, 다시 대규모 홍수로 이어지는 연쇄 과정도 가능하다. 기후변화가 단순히 '빙하가 녹아 물이 많아지는 문제'를 넘어 여러 자연재해가 서로 연결되는 구조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유형의 돌발홍수는 비가 내린 뒤 하천 수위가 차츰 오르는 일반적인 홍수와도 다르다. 상류에서 빙하나 암석이 무너지거나 일시적으로 막힌 물길이 갑자기 터지면 강우량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기존 홍수 경보만으로는 위험 징후를 포착하기 어렵고, 실제 대피에 주어지는 시간도 짧아질 수 있다.
안진호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복합 재난 우려를 짚었다. 안 교수는 "고산 빙하는 물을 얼음과 눈의 형태로 저장했다가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물 저장고' 역할도 하기 때문에 홍수와 더불어 식수와 농업용수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빙하호 붕괴홍수는 과거에도 있었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히말라야-카라코람 지역에서는 모두 388건의 빙하호 붕괴홍수가 기록됐다. 네팔에서는 54건이 확인됐다.
위험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은 빙하호 아래에 사는 사람과 시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빙하호 반경 10㎞ 안에 약 100만명이 거주한다.
수력발전 시설도 주요 위험 노출 대상이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IPCC 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히말라야에서 가동·건설·계획 중인 수력발전 프로젝트의 약 3분의 2가 잠재적인 빙하호 붕괴홍수 경로에 놓여 있다"며 "빙하가 후퇴하고 빙하호가 늘수록 상류로 들어선 시설의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기후위기로 빙하가 녹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위험은 산 위에만 머물지 않는다. 빙하호 붕괴나 암빙사태가 발생하면 물과 토사가 좁은 계곡을 따라 빠르게 하류로 이동하고, 주민뿐 아니라 도로·터널·수력발전 등 주요 기반시설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빙하가 없어 네팔과 같은 빙하호 붕괴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지만, 좁은 계곡과 산지에 물과 토사가 단시간에 집중된다는 재난의 구조 자체는 다르지 않다는 게 학계의 목소리다.
최 교수는 "집중호우 뒤 급경사지가 무너지거나 계곡에서 돌발홍수가 발생할 경우 산지 마을과 펜션·야영지, 도로·터널 등 대규모 건설현장이 고립될 수 있다"며 과거 강우자료를 토대로 정한 산사태 위험지역을 최근의 극한강우 수준에 맞춰 다시 평가하고, 계곡 상류의 강우량과 수위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하류 주민과 작업자에게 자동으로 경보가 전달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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