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빗속 국회로…간담회 고성에 장관 "대통령 보고"(종합)

'국가책임' 판결 뒤 첫 대면사과…피해자 "참사 공식화" 주장
유족은 위로금·급여 분리 요구…역사박물관 앞 추모비 촉구도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주재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자 간담회에서 박혜정 환경노출확인피해자 연합 대표가 정부 행태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들고 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서울=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지난해 6월 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정부 책임을 인정한 이후, 환경부 장관이 처음으로 피해자와 유족 앞에서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고성이 오갔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6일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피해자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국가를 대신해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장관은 "피해자·유족의 의견을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직접 보고해 합의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22개 단체 27명이 참석했다. 호우 속에서도 코에 비위관(엘튜브)을 꽂고 산소통에 의지한 피해자가 참석했고, 빗물에 휠체어가 흠뻑 젖은 채로 어렵게 자리한 피해자도 있었다.

정부 측에서는 김 장관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심종섭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 박연재 환경보건국장 등이 참석했다.

피해자 단체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라는 명칭과 국가 책임을 공식화할 것을 요구했다. 한 유족은 "세월호, 이태원 참사에는 대통령 사과가 있었는데 가습기살균제 참사만 빠졌다. 대통령이 직접 피해자 앞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상 체계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유족들은 유족 위로금과 구제급여가 분리돼 있지 않아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남편이 치료비로 6000만 원을 받았더니, 사망 후 유족 위로금에서 그 금액을 빼고 2000만 원만 지급됐다. 구제급여와 위로금을 분리해야 한다"는 아우성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또 "(거동이 어려운) 환자가 치료 후 영수증을 직접 모아 기술원에 제출해야 하는 구조는 모순"이라며 "건강보험공단이 우선 지급하고, 정부가 뒤에서 정산하는 방식으로 법을 고쳐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정 기준에 대한 불신도 컸다. 한 유족은 "초고도 피해자가 10명도 안 되고, 전체의 60~70%가 '등급 외'로 밀려났다. 죽었는데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한 집에서 같이 살균제를 썼는데 누구는 인정, 누구는 배제됐다"며 판정 기준의 모순을 지적했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의견을 듣고 있다. (환경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8.6/뉴스1

태아 피해 문제에 대한 목소리도 컸다. 민수연 희망솔루션 대표는 "저는 아이 다섯을 잃은 엄마다. 태아도 잉태되는 순간부터 가족이다. 그런데 태아 노출 사망자는 피해 신청조차 받지 않는다"며 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는 "청년이 된 피해자들은 배 속에서부터 아팠기에 건강하다는 게 무엇인지를 모른다. 태아 피해자에게 전신 질환을 인정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들은 회의록조차 남지 않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정부 태도를 강하게 성토했다. 김경영 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위원회 대표는 "간담회에서 문서를 제출해도 답변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회의록을 남기고 피드백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추모와 역사 기록 문제도 제기됐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에는 추모비가 있는데 가습기살균제 참사에는 없다. 역사박물관 앞에 추모비를 세워 역사의 교훈으로 남겨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환경부는 이번 만남을 지난 3월부터 이어온 권역별 간담회와 의견조사의 연장선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정부가 책임을 전제로 진정성 있게 나서지 않으면 이번 사과는 보여주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확정했다. 2심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이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를 불충분하게 하고,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고시해 피해를 키웠다"고 판시했다.

피해자들은 이 판결을 근거로 대통령 사과와 특별법 개정, 평생 치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ac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