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접수 '먹통' 10분, 학생의 미래는 누가 책임지나[전문가 칼럼]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성과 신뢰다. 짧게는 고교 3년, 길게는 12년의 학업을 이어온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수시 원서 접수는 그동안의 노력과 고민이 하나의 선택으로 모이는 순간이다. 수험생들은 원서 접수 시스템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맡길 대학과 학과를 고르며 간절한 마음으로 합격을 기원했을 것이다.
지난 11일 2027학년도 수시모집 원서 접수 마감을 불과 10분쯤 앞두고 원서 접수 시스템이 갑자기 멈췄다. 마감 직전 시스템 장애가 발생했고, 결국 접수 시간이 1시간이나 연장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제창이 멈추고 접속이 끊긴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수험생과 학부모는 지난 세월 쌓아 올린 노력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와 절망을 마주해야 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이 참담한 광경은 우리 대입 행정이 지닌 구조적 취약성과 공정성의 초라한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일부 수험생은 제시간에 원서를 제출하지 못했고,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학은 사후 구제 절차를 발표했지만 논란이 커지고 있다. 입시에서 이번 접수 마감 장애는 단순한 전산 장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접수 시스템이 잠시 멈춘 것이 아니라 한 학생의 일생이 걸린 공정한 도전의 기회가 멈춘 것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접수 시간 연장이 입시 공정성 훼손 논란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일부 대학의 경쟁률이 공개된 이후에도 접수할 수 있었다면, 당초 마감 시간 이전에 자신의 판단만으로 지원을 끝낸 학생보다 추가 경쟁률 정보까지 확인한 뒤 지원할 수 있었던 학생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입시는 치열한 정보 싸움이기도 하다. 원서 접수 마감 직전에는 수많은 지원자가 최종 경쟁률을 확인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적 판단을 내린다. 지원학과의 경쟁률이 5대 1인지 50대 1인지에 따라 최종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원서 접수 시간을 연장하려면 경쟁률 공개 중단, 정보 차단, 지원자 보호 조치가 동시에 마련됐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접수 시스템 장애가 발생한 뒤에야 연장 여부를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공정성 논란이 벌어졌다면 비상 대응 체계가 제대로 준비돼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대입 행정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예측 가능성과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정성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국민적 관심이 높아 단 하나의 실수나 불공정을 용납하지 못한다. 공공재여야 할 대입 원서 접수 시스템이 민간 대행업체 두 곳에 의존한다 보니 이번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매년 수십만 명의 수험생이 한정된 시간대에 몰린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도 원서 접수 서버 용량과 트래픽 분산 능력은 입시의 결정적 순간을 온전히 지탱해 내지 못했다.
이미 2005년 대규모 원서 접수 서버 마비 사태를 겪으며 공공 대입 접수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공적 시스템 도입 시도는 민간 대행업체들의 집요한 밥그릇 지키기 반발에 부딪혀 좌초됐다. 그 결과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형적인 민간 독과점 대행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교육부와 대교협도 행정적 방관으로 일관하는 사이, 단 두 곳의 민간 대행사는 매년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수수료 수익을 챙겨왔다. 이번 사태도 불가항력의 돌발 사고가 아니라 공적 책무를 팽개친 민간 업체의 태만과 이를 수수방관한 교육 당국이 합작해 낸 명백한 인재(人災)이자 직무 유기다.
사후 구제 역시 매우 신중해야 한다. 억울한 피해를 본 1000여 명에 달하는 수험생을 구제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구제할지 명확해야 한다. 접속 기록, 원서 작성 및 수정 기록, 결제 시도 기록 등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결정해야 한다. 자칫 선의의 구제가 또 다른 학생에게 불공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입시의 신뢰는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교육부와 대교협은 대입 원서접수 시스템을 단순한 민간 온라인 서비스가 아니라 인공지능(AI) 강국에 맞는 국가 수준의 교육 인프라로 다시 규정하고 공적 시스템으로 전환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민간업체 독점 운영 방식의 한계와 결함은 이미 여러 차례 노출됐다. 이제는 국가 수준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공공 인프라를 대교협과 교육부가 직접 책임지고 구축하는 방향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대학 입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수 그 자체보다 책임의 공백이다. 민간 대행업체보다는 국가 차원의 책임 있는 공적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규칙을 지키라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교육 당국부터 자신들이 만든 규칙을 지켜야 한다. 이제는 원서 접수 시스템의 오류에도 그만큼 엄격해야 한다. 누가 왜 대비하지 못했는지 책임을 묻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시스템과 매뉴얼을 근본부터 다시 전면 점검해야 한다. 수험생의 미래를 맡은 국가라면 그 정도의 책임은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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