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독도는 왜 우리 땅'인가…울릉도가 들려준 독도의 역사
울릉도·독도 수토 역사서 볼 수 있는 '독도는 우리땅' 증거
내년 일본 교육과정 개정…독도는 일본땅 주장 지속
- 조수빈 기자
(울릉=뉴스1) 조수빈 기자 =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87km. 지난 5일 꼬박 2시간 30분의 항해 끝에 대한민국 최동단 섬 독도에 도착했다. 산란기를 맞은 괭이갈매기들이 환영하듯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독도 곳곳에는 이곳이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독도경비대가 섬을 지키고 있었고 독도를 지키는 삽살개는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함께 내린 독도지킴이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이 직접 쓴 편지를 독도경비대에 전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섬 곳곳에는 오랜 세월 독도를 지키고 연구하며 기록해 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독도 동도 초입에는 '독도 이사부길'이라는 도로명 표지판이 서 있다.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한 역사에서 이름을 따온 길이다. 독도경비대 건물이 동도를 굽어보고 있고 경비대 건물 옆쪽 바위에는 '한국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그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쉽게 말문이 막히곤 한다. 그 답은 울릉도에 있었다. 한때 울릉도와 독도를 함께 아우르던 우산국의 역사와 조선의 행정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독도가 우리 역사와 행정체계 안에서 관리돼 왔음을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다.
울릉도와 독도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 지증왕 13년인 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독도박물관은 이를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역사에 편입된 가장 이른 기록으로 소개하고 있다. 실제 울릉도에서 발견되는 유적들 역시 우산국 정벌 이후 신라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차원의 관리가 이어졌다. 1690년대부터 시행된 수토정책은 정부가 정기적으로 관리관을 파견해 울릉도와 주변 섬을 조사하고 관리한 제도다. 이는 조선이 울릉도와 독도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다는 대표적인 근거로 꼽힌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독도 실장은 "1693년 울산 출신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조업을 하다 일본 어민들에게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간 안용복 사건 이후 수토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수토관들은 울릉도의 토산물을 조사해 진상하고 섬에 머무는 우리 어민과 일본인을 확인해 본토로 돌려보내는 등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이들이 수토 사실을 바위에 새긴 신묘명 각석문과 광서명 각석문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사료로 남아 있다.
울릉도 곳곳에는 일본의 침탈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울릉도와 독도에 망루를 설치해 러시아 함대를 감시했다. 현재 석포일출일몰전망대 일대에는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망루의 콘크리트 흔적이 남아 있다.
해방 이후에도 독도를 둘러싼 갈등은 계속됐다. 일본은 순시선을 보내 독도에 접근하거나 영토 표지 설치를 시도하며 영유권을 주장했고, 우리 측은 이를 철거하거나 교체하며 대응했다. 결국 홍순칠 대장을 중심으로 울릉도 청년들이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해 직접 독도를 지키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갈등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일본 정부는 내년 학습지도요령 개정을 앞두고 있으며 올해 2월 열린 '죽도의 날' 행사에는 집권 자민당 핵심 인사가 참석했다. 2026년판 외교청서에서도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이자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지역'이라고 기술하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은 학생과 교원을 대상으로 독도 체험과 역사교육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외교 대응과 함께 국민 개개인이 독도의 역사적 근거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 역시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 없는 외로운 화산섬. 하지만 독도의 역사는 결코 고립돼 있지 않았다. 우산국의 역사부터 조선의 수토정책, 울도군 설치, 독도의용수비대, 그리고 오늘날 이어지는 독도교육까지 수백 년 동안 이어진 기록과 사람들의 노력이 오늘의 독도를 만들었다.
독도를 떠나며 독도기념관에 새겨진 사운 이종학 선생의 글귀를 다시 돌이켜 본다.
'역사가 대대로 누릴 정신의 옥토라면지금 제대로 갈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ch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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