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다시 만난 논어 [박남기의 미래 나침반]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나는 한 곳에 서 있다. 가능한 한 세상을 고루 볼 수 있는 탁 트인 그곳에 서 있으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나는 많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붙이고, 이야기를 나눈다. 공감하며 친분을 쌓기도 한다. 세상이 나에게 의견을 물어오면 상황을 따지지 않고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편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가능하면 부드러운 화법을 사용하려 애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은근히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해 주리라 기대하거나 그리하기를 바라다가 내가 그리하지 않으면 나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적대시하기도 한다. 왼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가 오른쪽에 있다고 하고, 오른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내가 왼쪽에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들의 눈에는 그리 보일 것이다.
언뜻 내가 좌우명으로 삼은 공자님 말씀이 떠올라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불확실해 서재를 살펴보니 논어가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논어를 펼쳐봤다. 첫 장에 1987년 3월 29일이라는 글씨와 내 이름,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32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표지를 비닐로 싸놓은 덕에 깨끗했다. 그 해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소에 근무하던 시절인데 아마도 학부 때 공부했던 것을 떠올리며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시절,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논어를 읽었을까. 밑줄 친 내용을 보니 오늘날 내 삶의 좌표가 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군자는 괜히 자존심을 내세워 남과 다투지 않되, 편을 들어 패거리를 만들지도 않는다(子曰 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 자왈 군자긍이부쟁 군이부당. 논어, 위령공 제21장)는 말씀을 읽으며 나를 돌아본다. 가리지 말고 세상과 널리 어울리되, 사사로이 편당을 짓지 않는다(君子周而不比. 군자주이불비. 논어, 위정편 제14장)는 말씀도 맥을 같이 한다. 이 말씀은 원래 세상 사람들은 편 가르기를 좋아하고, 자기편이 아니면 배척하는 것이 다반사이니 공부하는 사람만이라도 그리하지 말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위령공' 편을 훑어보니 눈에 익은 말씀이 많다. "더불어 말을 나눠야 할 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사람을 잃는다. 더불어 말을 나누지 않아야 할 때 말하면 말을 잃는다. 사람과 말을 모두 잃지 않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제7장). "군자는 실력 없음을 두려워하지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제18장). 평생 행할 만한 가장 소중한 것 하나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냐는 자공의 물음에 "서(恕·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23장)는 공자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는다.
가슴에 와닿는 좋은 말씀은 읽고 또 읽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면 삶에 크게 도움이 된다. 살다 보면 어찌해야 좋을지 잘 모르는 순간이 많다. 원하는 좌우명을 많이 외우고 있으면 이들이 적응무의식상태에서 판단에 영향을 미쳐 훗날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기본기가 몸에 배면 운동할 때 의식하지 않아도 기본기가 발휘되듯 외워놓은 좌우명 또한 나의 일부가 돼 행동과 사고를 좌우한다. 논어 위령공편 하나에도 내 삶의 좌표가 되어온 말씀이 가득함을 새삼 깨닫는다. 기억에서는 사라진 20대 시절의 공부가 무의식에 남아 내 삶의 지침이 되고 있었다.
7년 전에 썼던 이 글을 읽으며 지난 7년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간 나는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그리고 행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 그리고 그 노력은 나를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그간 수많은 글을 읽고 쓴 덕에 역사 사회적 지식, 인간의 뇌, 인공지능(AI) 등에 대한 지식이 일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대 때의 깨달음이 거의 30여 년 이어져 왔듯이, 지난 7년간의 공부가 내 생각의 틀을 크게 바꾸지는 않은 것 같다. 젊은 시절의 공부가 내 뇌가 되고, 그 뇌에 의지해 평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과학 발전과 환경 변화 상황을 볼 때 앞으로의 삶은 과거와 달리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이에 따라 내 생각의 틀이 크게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오래된 미래, 즉 고전을 통해 현자들의 지혜를 배우며 생각의 토대를 더욱 튼튼하게 다져야 인류를 위한 바른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으리라. 20대의 내가 무의식적으로 흡수한 논어의 구절이 오늘의 나를 지탱하듯, 지금 우리가 다지는 인문학적 토대는 인류가 맞이할 새로운 문명의 품격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공자가 강조한 '주이불비'(周而不比)의 자세로 다양성을 포용하고 편협함을 경계하는 성숙한 시민을 필요로 한다. 데이터에 기반한 효율성보다 인간의 아픔을 공감하는 '서'(恕)의 정신이 기술 설계의 밑바탕이 되도록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고전은 낡은 유산이 아니라, 급변하는 미래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단단한 닻임을 내 과거의 기록을 뒤적이다가 새롭게 깨닫는 4월이다.
☞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는…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정책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가인재경영연구원 교육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광주교대 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대한교육법학회장, 한국교원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고의 교수법, 리더십 등을 주제로 10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실력의 배신'(2018), '생성 AI 시대 최고의 교수법'(2024) 등 20여 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과 1000편 이상의 각종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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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나침반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을 안내하는 도구입니다. 방향은 제시하지만, 특정 경로를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이 칼럼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와 나아갈 길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