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고사 당일 아침, 학교와서 문제지 받아가라는 교육청
24일 서울교육청 주관 학평 문제지 배부방식 논란
"탁상행정…사회적 거리두기 취지에도 맞지 않아"
- 권형진 기자
(서울=뉴스1) 권형진 기자 = 서울시교육청이 24일 올해 첫 전국단위 모의고사를 '재택시험'으로 치르기로 하면서 당일 아침에 문제지를 학교에서 배부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지를 받기 위해 짧은 시간에 전교생이 학교에 '등교'할 수밖에 없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원격수업을 하는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부, 시·도 교육청과 협의한 결과 24일로 예정된 전국연합학력평가(학평)를 원격수업 프로그램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학생들이 집에서 시험 시간표에 따라 스스로 문제를 풀어보는 방식이다. 전국단위의 채점과 성적 처리도 하지 않는다.
서울교육청이 주관하는 이번 학평은 올해 고3들이 치르는 첫 전국단위 모의고사다. 당초 지난달 12일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등교개학이 늦춰지며 모두 네차례 연기됐다.
고3 학생들이 자신의 전국적인 위치를 파악하고 수시전형과 정시전형 가운데 어디에 집중할지 등을 결정하는 잣대로 삼는 데 의미가 있는 시험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은 고3 학생들만 이날 등교해서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교육부와 보건당국이 '등교출석 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재택시험으로 바꿨다.
학생들이 시험 당일 아침 학교에 들러 문제지를 받아 오전 9시40분부터 시험을 치르도록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원래 시험 시작 시간은 오전 8시40분부터이지만 시험지 배부 시간을 고려해 1시간 늦췄다. 과목별 문제지는 해당 교시 시작 시간에 맞춰 시·도 교육청 홈페이지와 EBSi에도 탑재한다. 정답과 해설은 당일 오후 6시 이후 공개할 예정이다.
재택시험 방식으로 바뀌면서 시험 대상도 고교 1~3학년으로 확대됐다. 원래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3월 학평'은 고3뿐 아니라 고교 1~2학년도 대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개학 상황을 감안해 고3만 등교해서 치르는 방식을 검토했다가 재택시험으로 바뀌면서 시험 대상을 다시 고 1~3학년 전체로 변경했다.
문제는 아침 출근시간대에 전교생이 문제지를 받기 위해 학교에 가게 되면 '등교'와 큰 차이가 없어진다는 데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에 보낸 공문에서 학생 내교 시간 분산, 드라이브 스루나 워킹 스루 등 대면을 최소화해 문제지를 배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시험 시작 시간이 9시40분부터인 점을 감안하면 출근 시간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사이에 전체 학생이 학교에 몰리는 현실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학교에서 올해 신학기 교과서를 나눠줄 때 학년별로 분산해 '드라이버 스루' 방식으로 나눠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했다"라며 "이번 결정은 학생 안전을 위해 원격수업을 하는 취지와도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학평은 전국단위 채점과 성적 처리를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모의고사로서의 의미가 없어졌다. 집에서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풀어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고3 수험생에게는 진학 방향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시험이라 취소는 어려웠을 것"이라면서도 "정식으로 채점하는 게 아니라 학생 스스로 자기 실력을 점검하는 정도의 용도라면 굳이 당일 아침에 문제지를 배부해야 하는지 아쉬움이 남는다"라고 말했다.
학생 자율 점검에 맡기는 방식이라면 전날 오후나 저녁까지 학생들이 가져갈 수 있게 시간 여유를 넉넉하게 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번 학평 문제지는 전날 오후 2시까지 전국 각 고등학교로 배송이 완료될 예정이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고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모든 학생이 학교에서 문제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 9시40분부터 시험을 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탁상행정'일 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봤을 때도 무리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jin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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