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 활동 알면서도 신고 안 해" 누명…재심서 50여 년 만에 무죄

"5일간 불법 구금…임의성 없는 심리상태서 진술"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청사 모습. ⓒ 뉴스1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북한 활동에 동조하는 지인을 알고도 수사기관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성 모 씨가 50여 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합의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지난 9일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혐의를 받는 성 씨의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1972년 당시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성 씨는 지인들이 북한의 통일방안에 동조하는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불고지'(구 반공법 8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972년 9월 성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어 1973년 1월 서울고법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5년,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선고했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성 씨의 형이 확정됐다.

성 씨는 1994년 9월 사망했고 성 씨 자녀는 지난해 재심을 청구, 서울고법은 올해 5월 재심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육군보안사령부가 작성한 보고에는 수사관들이 성 씨의 범죄사실을 인지하고 1972년 3월 22일 성 씨를 임의동행했다고 기재됐는데, 성 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5일이 지난 3월 27일에 집행됐다. 재판부는 "당시 작성된 수사기록의 기재에 따르더라도 피고인은 적어도 5일간 불법으로 구금됐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성 씨가 고문·가혹행위를 당해 허위 진술을 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주장했다는 점도 인정됐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검찰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와 진술서는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성 씨는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체포·구금된 상태에서 가혹행위 등을 당해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에서 수사기관에서 자백했고 그 후 검사의 피의자 신문 단계에서도 그러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돼 진술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며 "검사는 그러한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울러 앞서 유죄 근거로 활용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성 씨가 지인들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자'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사 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않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설령 지인들이 성 씨에게 '남북한 협상을 통한 평화통일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구체적이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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