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이겼다"…다문화 자녀 이름 제한 예규 바꾼 변호사
[프로보노] ⑩ 김광재 세종-공익법인 나눔과 이음 변호사
34년 유해물질 노출 소방관, 파킨슨병…"국가 책무 다해야"
- 이장호 기자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우리는 보통 권리 구제 수단으로 소송을 떠올리곤 한다. 사회적 약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 수년 또는 수십 년의 법정 다툼 끝에 승리를 한 뒤 그동안 함께 한 동지들과 함께 법원 정문 앞에서 승소 소감을 말하는 건 오래된 '서초동 클리셰'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모습을 깨고 바로 규칙을 바꾸는 시도를 해, 1개월 만에 권리 구제에 성공한 공익 변호사가 있다. 바로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 출생한 자녀의 이름 글자 수 제한 폐지를 이끈 법무법인 세종-공익법인 나눔과 이음, 공익법률지원센터 소속 김광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다. 뉴스1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났다.
한국 국적 남성과 포르투갈 국적 여성 사이 태어난 '크리스티아누 파레스 김'. 포르투갈에선 당연히 그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러지 못했다. '김 크리스티아누'로 출생신고를 했지만 반려됐다. 한국인 아빠와 외국인 엄마 사이 출생자는 이름자 5자를 넘길 수 없다는 대법원 예규 때문이었다.
"외국인 부와 한국인 모 사이 출생자는 이름 5자를 넘길 수 있었지만 그 외 경우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부는 여권발급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김 크리스티아'로 출생신고를 하고, 저희 법무법인 세종-나눔과 이음 공익법률지원센터에 법률구조를 요청했습니다."
김 변호사는 재판을 통한 '우회로'보다 대법원 예규 개정이라는 '지름길'을 택했다. 수많은 소송 경험을 통해 재판을 통한 권리구제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가 관여한 낙태죄 사건은 2010년 위헌소원이 시작됐는데 2019년에 헌법불합치결정까지 9년이 걸렸다"며 "선거운동 기간 중 인터넷실명제 사건은 2008년 헌법소원이 제기됐는데, 2021년에 비로소 위헌결정을 받았으니 무려 13년이 걸렸다"고 했다.
대법원 예규를 다투려면 최종적으로 대법원까지 가야 하니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아이는 온전한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대법원 예규가 위헌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김 변호사는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지난 5월 언론 기고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후 뒤 2주 뒤 대법원에 예규 개정안을 제출했다.
예규 개정안을 제출한 뒤 한 달이 지난 6월 24일, 대법원은 외국인 모-한국인 부 사이에 태어난 자녀의 이름이 5글자를 넘더라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예규를 개정했다.
김 변호사는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 했는데, 기나긴 소송보다는 대법원의 자발적 개정을 이끌어내는 이번 전략이 다행히도 그대로 적중했다"며 " 즉각적으로 이에 응한 대법원 담당자들의 공도 상당히 크므로, 그분들께 깊이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만큼, 이름 글자 수 제한같이 법령·제도 곳곳에 남아있는 단일민족 사회를 전제로 한 규정들을 고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인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이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가 됐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이 외국인의 정치적 권리의 보장 문제입니다."
특히 외국인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원칙적으로 부정하는 공직선거법 제60조 제1항과 선거운동 이외에도 외국인의 정치활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출입국관리법 제17조 제2항 및 제3항 등이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변호사는 "영주권 취득 후 3년 이상인 사람들은 예외적으로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을 할 수 있고, 나머지 외국인들은 선거운동 자체가 안 된다"며 "선거권은 안 주더라도 자기들의 권익을 위해 선거철에 선거운동 보조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거 자체를 못 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출입국관리법에서 아예 모든 정치활동을 못 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문화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 중 소수자 집단인 외국인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최근 집중하고 있는 사건은 바로 파킨슨병에 걸린 전직 소방관의 행정심판 사건이다. 34년간 화재진압과 화재조사 업무를 하며 지속해서 일산화탄소, 망간, 벤젠 등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이 소방관은 퇴직 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그는 국가유공자 및 보훈 보상 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보훈지청으로부터 거부당했다. 파킨슨병과 소방관 업무하고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파킨슨병의 원인은 의학계도 모른다. 인과관계 입증이 누구도 불가능하다"며 "그런데 소방관에게 입증하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사건을 맡은 '나눔과 이음' 변호사들은 해외 사례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소방관이 일반인에 비해 파킨슨병 유병률이 약 7.5~10배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소방관들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때는 의외로 화재를 진압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화재 진압 후 진행하는 화재조사 때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
김 변호사는 "화재 조사 때도 잔불도 남아있고 유해가스도 남아있는데 조사를 할 때는 서로 이야기를 해야 해서 마스크를 벗는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기 때문"이라며 "흔한 질병이 아닌 파킨슨병의 유병률이 소방관들이 높다는 건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소방관들의 희생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소방관들은 일상에서 현장에 직접 뛰어듭니다. 그런데 보훈 측면에서 군인이나 경찰에 비해 인색합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희생하시는 소방관들을 보호를 못 해주면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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