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원룸관리한 형, 보증금 다른 임차인 반환에 써도…대법 "횡령 아냐"

"광범위한 재량 가지고 보증금 사용할 권한 부여"

ⓒ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문혜원 기자 = 건물주인 동생을 대신해 건물을 관리해 온 친형이 새로 받은 보증금을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썼더라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년 넘게 보증금 관리를 맡아 온 친형에게 넓은 재량권이 부여된다는 이유에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지난 3일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는 A 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1996년부터 남동생 B 씨 소유 건물을 20년 넘게 관리했다. 19개 원룸의 임대차 계약 체결부터 보증금 수령·반환까지 전체적인 건물 관리 업무를 맡았다.

A 씨는 2018년 B 씨를 대리해 임차인 2명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에게서 각각 보증금 5000만 원, 4000만 원을 받아 보관했다.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임차인들은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A 씨는 이를 거부했고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지난 2024년 6월 A 씨의 업무상 횡령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B 씨에게 횡령금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도 지난해 6월 A 씨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A 씨는 지급받은 임대차 보증금을 다른 임차인들이 퇴거할 때 사용했다며 불법영득 의사가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2심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은 "임차인들이 지급한 자금은 추후 임대차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그대로 반환돼야 할 것으로 그 용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고, 임대차 보증금을 다른 임차인들의 임대차 보증금 반환을 위해 지출했더라도 그 자체로 '용도 이외'의 사용"이라며 A 씨의 불법영득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 씨는 20년 이상에 걸쳐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건물 관리를 위임받아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임대차 보증금 수령·반환 업무와 각종 건물 관리 비용 보관·지출 업무와 관련해 구체적인 사용 목적, 사용처, 사용 시기 등에 관한 광범위한 재량을 가지고 이를 사용할 권한이 사실상 부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고나 증빙자료의 제출도 요구되지 않는 형태로 관리업무를 수행해 왔던 이상 A 씨가 오랫동안 누적돼 온 임대차 보증금의 행방이나 사용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증빙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함부로 불법영득의사를 추단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A 씨가 임대차 보증금을 본래의 사용 목적과는 관계없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지출하였다는 등의 사정을 인정할 뚜렷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고 임대차 보증금을 그대로 보관했다가 추후 임차인에게 반환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용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doo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