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없이 숨진 장남 재산, 아내에게'…헌재 "옛 관습법 위헌 아냐"

"여성 경제활동 곤란하던 시대, 생계보호 필요성"

헌법재판소 ⓒ 뉴스1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 호주가 아닌 장남이 자녀 없이 사망한 경우 장남 재산을 그의 아내가 단독 상속한다는 옛 관습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최근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1958년 제정된 민법이 시행되기 전 '호주 아닌 기혼 장남이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한다'는 관습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A 씨의 자손들은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일대 임야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 이행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A 씨의 형은 1919년 혼인을 했으나 자녀 없이 사망했는데, 당시 호주는 A 씨와 A 씨의 형의 할아버지였다. A 씨의 형이 갖고 있던 이 임야가 할아버지에게 상속이 됐고, 할아버지 사망 후 다시 A 씨에게 상속이 됐기 때문에 자신들이 임야의 상속인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호주 아닌 기혼 장남이 직계비속 없이 사망한 경우 그 재산은 처가 상속한다는 민법 시행 전 관습에 따르면 A 씨 형의 재산을 A 씨 형의 처가 단독으로 상속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당시 관습법상 A 씨 할아버지는 상속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A 씨 자손들도 물려받은 재산이 없기 때문에 등기 말소를 청구할 권한이 없다는 뜻이다.

A 씨 자손들은 대법원에 해당 관습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냈으나 각하되자, 헌재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이 관습법은 호주에게 집안의 재산을 집중시키던 호주제의 구조 아래에서 호주상속에 수반되는 재산승계와 호주 아닌 가족의 사망에 따른 재산상속을 구분했던 종래 상속관습법의 체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의 독자적인 사회진출 및 경제활동이 현저히 곤란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처의 생계를 보호할 필요성이 컸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처를 상속순위에서 직계존속보다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상속제도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계존속에 대한 공경 및 부양 역시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중요한 의미를 가져온 윤리적 가치"라면서도 "그로부터 곧바로 직계존속에게 처보다 우선하거나 적어도 처와 동일한 상속순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이 도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피상속인이 사망한 1919년으로부터 100년 이상 지난 시기에 청구됐는데, 이미 폐지된 관습법 효력을 사후적으로 부인하면 관습법 적용을 전제로 형성된 모든 법률관계가 한꺼번에 뒤집혀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형식, 조한창, 정계선 등 3명의 재판관은 관습법이 헌법소원심판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관습법의 성립에는 국회의 관여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관습법은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받은 규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헌재가 헌법을 최고규범으로 하는 법질서의 통일성과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습법에 대한 위헌심사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이 사건의 경우 재판소원이 허용되지 않은 구 헌법재판소법이 적용되기는 하나,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된 이후에는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통해 이를 다툴 수 있게 됐다"며 "국민 권리구제와 법적 통일성 확보를 위해 헌재가 관습법 자체를 별도로 직접 심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헌재 관계자는 "관습법이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된다고 본 선례의 입장을 유지한 것"이라며 "호주제를 중심으로 한 과거 상속관습법의 체계와 여성의 독립적인 경제활동이 현저히 제한됐던 민법 시행 전 사회적․경제적 여건과 가족생활의 현실 등을 반영한 것으로서 합리적인 이유가 인정돼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안"이라고 부연했다.

ho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