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 살해한 육군장교…피해자인 척 전화받아 '실종수사' 교란

[사건의 재구성]피해자 휴대폰으로 살아있는 척 주변 속여
서울청, 실종수사 개선안 내놓기도…예산 문제로 실행 안 돼

함께 근무하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 유기한 군 장교 출신 양광준. (강원경찰청 제공) 2024.11.13 ⓒ 뉴스1 이종재 기자

(서울=뉴스1) 윤주영 기자 = 2024년 11월 2일 오후 2시 46분쯤 강원 화천군 화천대교 북한강 하류 300m 지점에서 의문의 형체가 떠올랐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확인한 결과, 이는 일주일 전쯤 실종된 여성의 시신이었다.

앞서 10월 25일 오후 3시쯤 경기도 과천의 한 군부대 소속 육군 장교 양광준(당시 38세)은 내연 관계의 군무원 A 씨를 부대 주차장에서 만났다. 차 안에서 A 씨는 불륜 사실을 주변에 폭로하겠다고 했고, 압박을 벗어나려던 양 씨는 주변에 있던 노트북 도난방지용 고정줄을 이용해 A 씨를 살해했다.

범행을 은폐하기로 마음먹은 양 씨는 같은 날 오후 시신을 부대 인근 공사장으로 옮겨 여러 부위로 끝장냈다. 다음날엔 자신이 근무했던 강원 화천군으로 이동한 뒤 훼손한 시체가 담긴 비닐봉지를 북한강 하류에 가라앉혔다.

양 씨는 수사기관과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 죽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했다.

범행 이튿날 A 씨 어머니는 딸의 미귀가를 걱정하며 경찰에 신고했다. A 씨 휴대전화를 갖고 있던 양 씨는 경찰에 연락해 여자 목소리를 내며 A 씨인 척했고, 서울 관악경찰서는 특이사항 없는 사안으로 판단했다.

이 밖에도 양 씨는 A 씨 휴대전화로 부대 측에 '휴가 처리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으며, A 씨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잠수'(연락을 받지 않고 숨는 상태)로 바꾸기도 했다. 이 밖에도 휴대전화 비행기모드 설정·해제를 반복하며 피해자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몄다.

하지만 북한강 하류서 떠오른 시신에서 양 씨 지문 등이 나오면서 범행이 드러났다. 피해자 통화 기록, 폐쇄회로(CC)TV 영상, 가족·주변인 탐문 등을 한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지 약 28시간 만인 11월 3일 오후 7시쯤 양 씨를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살인, 시체손괴, 시체은닉, 자동차관리법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 씨는 지난해 3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범행 방법 등에 비춰보면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확정적인 고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후 양 씨는 양형 부당을 이유로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지만 2심도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불륜 관계를 폭로하겠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껴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범행 방법이나 증거인멸 방법을 검색한 등 피해자를 살해할 경우를 사전에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후 양 씨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는 취지로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2월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사정들을 보면, 상고 이유에서 주장하는 사정을 참작하더라도 무기징역을 선고한 제1심 판결을 유지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범행이 일어난 2024년 서울경찰청은 이 사건을 분석한 뒤 '실종사건 수사체계 개선 방안'을 경찰청 본청에 건의하기도 했다. 서울청은 대면 등 신뢰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실종자의 안전을 직접 확인해야 했고, 시스템상 관리자의 확인·승인 절차가 없는 등 실종신고 종결 과정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당시 건의를 반영해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 재구축을 계획했지만, 예산 당국으로부터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해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지난달 '제주 실종 수사 연쇄 허위 종결'이 공론화되고 나서야, 경찰은 실종 사건 종결 시 과장 등 지휘라인의 결재를 받도록 개선책을 내놨다.

legomast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