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보안사 '박형규 목사 축출공작'…법원 "국가가 배상해야"

보안사 공작 뒤 폭행·감금…수사기관은 축소·은폐
법원 "국가가 종교자유 침해…교회 내부분열 조장"

故 박형규 목사의 빈소. 2016.8.19 ⓒ 뉴스1 최현규 기자

(서울=뉴스1) 장시온 기자 = 1980년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고(故) 박형규 목사를 서울제일교회에서 축출하기 위해 교인들을 회유해 교회 분열과 예배 방해를 조장하고, 수사기관은 폭행·감금 사태를 은폐한 데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2부(부장판사 강경표 박원철 박해빈)는 지난달 9일 서울제일교회와 교인·유족 등 9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했다.

과거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보안사는 종교계의 민주화운동을 막기 위한 '교계 저항세 무력화 대책'을 마련하고 서울제일교회를 공작 대상인 '문제 교회' 6곳 중 하나로 지목했다. 박 목사도 A급 기독교 인물 21명에 포함됐다.

보안사는 장로와 집사 등을 개별적으로 만나 박 목사에 대한 반감을 조성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박 목사 반대 세력을 확대하고 교세 감소의 책임을 박 목사의 민주화운동에 돌려 자진 퇴진을 유도하려 했다.

이후 일부 교인들은 예배 시간 내내 찬송가를 부르거나 솥뚜껑으로 헌금대를 내리치는 방식으로 설교와 예배를 방해했다. 보안사는 이런 내용을 공작의 성과로 대통령에 보고했다.

보안사는 반대파 교인에게 교회 건물 소유권을 둘러싼 민사소송을 제기하도록 유도하고 변호사를 알선하기도 했다. 재판을 장기화해 박 목사 측의 자금을 고갈시키고, 박 목사만 물러나면 교회 문제가 해결된다는 인식을 퍼뜨리려는 목적이었다.

보안사가 조장한 교회 내부 갈등은 폭력 사태로 번졌다. 1984년 9월 박 목사와 일부 교인이 반대파 교인과 외부인에게 감금됐고, 박 목사는 같은 달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안기부 등 수사기관은 조직폭력배가 교회 폭력 사태에 가담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수사를 최대한 지연시켰다. 안기부 문건에는 보안사의 배후 개입 부분을 '사실무근'으로 처리한다는 관계기관 방침도 담겨있었다.

이에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은 진실규명을 신청했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2022년 11월 국가가 이들에 대한 사과와 피해·명예 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렸다.

이후 서울제일교회와 교인 및 유족들은 2024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9월 1심은 보안사의 공작과 수사기관의 방치·은폐가 모두 국가의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민이 종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그 최소한의 의무조차 위반했다"며 "교인들을 회유해 반대파를 조성하고 예배를 방해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교회 내부 분열을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폭력 사태가 감금과 입원 치료가 필요한 상해로까지 확대됐는데도 수사기관이 이를 교회 내부 문제로 치부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한 것에 대해 "현저하게 불합리하거나 경험칙 또는 논리칙상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라고 판단했다.

이에 국가가 서울제일교회에 40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하고 박 목사와 배우자, 자녀들, 당시 교인들에게도 피해 정도나 상속관계에 따른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다만 국가의 직접적인 불법행위가 1983~1986년 사이에 이뤄졌다고 보고 이 기간 서울제일교회 교인이었다는 점이 확인된 이들만 배상 대상으로 인정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1심 판단을 유지하고 박 목사 자녀 4명에 대한 배상액을 각 1875만 원에서 2175만 원으로 증액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등을 지낸 박 목사는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빈민선교와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인물로 지난 2016년 별세했다.

zionwk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