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차기·성폭행 피해자들 "보완수사 폐지 형소법 개정 멈춰달라"
범죄 피해자 첫 집단 목소리…"피해자 없는 개혁은 개혁 아냐"
- 최동현 기자, 문혜원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문혜원 기자
"수사권을 누가 가질 것인가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가 억울하게 남겨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강화도 유기 치상 사건 피해자 유족)"검사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저는 구제받지 못했을 겁니다."(세종시 집단 성폭행 피해자)
부산 돌려치기 사건, 인천 강화도 유기치상 사건,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 국민적 공분을 샀던 강력범죄의 피해자들은 15일 "피해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 논의를 당장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범죄 피해자들을 대리해 온 오지원 변호사와 피해자들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의 검찰개혁은 피해자가 배제된 채 이뤄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검사의 직접·보완 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관련해 범죄 피해자들이 직접 한목소리를 낸 것은 처음이다.
회견에는 '인천 강화도 유기치상 사건' 피해자의 딸인 한지유(가명) 씨, '부산 돌려차기 강간 등 살인미수 사건' 피해자 김진주(필명) 씨, '세종시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 정연수(가명) 씨, '위력 관계 성폭행' 피해자 김윤지(가명) 씨, '스토킹 및 교제 폭력' 피해자 최윤희(가명) 씨, '75회 거부 성폭행' 피해자 한우리(가명) 씨, '서현역 칼부림 사건' 피해자 고(故) 김혜빈 씨의 유가족 등 7명이 참석했다.
한지유 씨는 경찰의 초동 수사 실패로 증거 사라졌던 점을 지적했다. 이 사건은 2023년 강화도에서 지유 씨의 의붓아버지가 집 화장실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아내를 발견하고도 '가정 폭력으로 오해받기 싫다'며 사진만 찍어 지유 씨에게 보낸 뒤 테니스를 치러 외출한 사건이다.
지유 씨의 신고로 어머니는 뒤늦게 병원에 옮겨졌지만,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경찰은 의붓아버지에게 유기 혐의만 적용해 송치했는데, 검찰은 보완수사를 통해 치료가 늦어져 아내의 상태가 악화했다고 보고 유기치상으로 혐의를 바꿔 기소했다.
지유 씨는 경찰의 초동수사 실패를 검사의 보완수사로 바로잡은 점을 짚으면서 "피해자를 배제한 검찰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권을 누가 가지냐보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억울하지 않게 남겨두는 것이다. 피해자를 지워버린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 씨는 경찰의 초동 수사와 피해자 보호 조치 모두 엉망이었다고 꼬집었다. 이 사건은 2022년 귀가하던 진주 씨를 일면식 없는 30대 남성이 뒤쫓아가 무차별 폭행하고 성폭행을 시도한 사건이다. 경찰은 수사 초기 상해 사건으로 수사했지만, 검찰이 성범죄 목적을 밝혀내면서 강간살인 미수 혐의가 인정돼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진주 씨는 "가해자가 사흘 동안 도주했지만 저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고, 경찰은 제 상처조차 제대로 촬영하지 않아 친언니가 대신 찍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록을 보려고 해도 거부당했고, 재판 내용을 알기 위해 직접 법정에 다녀야 했다"며 "피해자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서 보완수사권까지 없애면 결국 피해자만 더 오래 기다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세종 집단 성폭행 사건' 피해자 정연수 씨도 "경찰은 참고인 조사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인 제가 직접 증거를 찾아다녀야 했다"며 비슷한 경험을 고백했다. 연수 씨는 "(검찰) 보완수사가 없는 구조였다면 저는 구제받지 못했을 것"이라며 "보완수사는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구원과도 같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범여권이 강행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으며,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할 경우 더 많은 부실수사와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 입을 모았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김윤지 씨는 "피해자 의견을 듣지도, 묻지도 않고 법을 바꾸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한우리 씨는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폐지된다면, 피가 마르는 피해자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씨는 가해자의 성폭행을 75차례 거부하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우리 씨는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피해자들을 대리한 오지원 변호사는 "현재 발의된 형사소송법 개정안 대부분은 (검찰의) 권한 남용을 막는 것에만 초점을 둔 나머지, 수사권 조정 이후 심각해진 수사 지연과 부실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피해 회복과 구제가 더 늦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지희 변호사는 "피해자가 수사 진행 상황을 알 수 있도록 통지의무를 명문화하고, 고소인이 수사기록을 열람·복사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또 전건송치를 반드시 도입해서 (공소청의) 수사 통제장치를 일원화하고, 피해자가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피해자 참가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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