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자랑 장소 변경됐다고 기부금 사기?…대법 "단정 못해"

1·2심 벌금 300만 원→대법 "기부 본질적 요인 아냐, 민사 해결 가능"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2026.3.12 ⓒ 뉴스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기자 = 노래자랑 행사 장소가 당초 설명과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기부금을 받은 주최 측 대표를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부산 지역에서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해 온 한 사단법인의 이사장 A 씨는 2023년 8월 피해자에게 부산 중구 용두산공원에서 노래자랑 행사를 열 예정이라며 기부금 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당시 행사가 유라리광장에서 열리기로 정해져 있었고, 장소 변경도 불가능했는데도 A 씨가 용두산공원에서 행사를 열 것처럼 피해자를 속였다고 봤다.

1심은 A 씨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1심은 피해자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용두산공원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조건으로 기부금을 줬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2심 판단도 같았다. 2심은 A 씨가 피해자에게 '용두산공원 특설무대'라고 적힌 행사 포스터 파일을 보냈고, 피해자가 이를 확인한 뒤 500만 원을 송금한 점 등을 들어 A 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기망행위와 착오, 재산 처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또 계약 위반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본질적 부분이 아니라면 곧바로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봤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A 씨가 피해자를 기망해 기부금을 편취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 행사가 부산 중구 구민과 소상공인의 복리 증진을 위한 행사였고, 피해자가 작성한 '추대 수락서'에도 개최 장소가 별도로 기재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행사 취지에 공감해 기부금을 내고 대회장 직을 맡는 것을 주된 요소로 삼아 기부금을 제공한 것으로 보일 뿐, 행사가 유라리광장과 용두산공원 중 어디에서 개최되는지가 기부행위의 본질적 요인이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두 장소가 부산 중구 관할구역 내에 인접해 있고, 실제 행사가 유라리광장에서 개최됐다고 해서 관객 구성이나 행사 진행, 목적 달성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은 "계약의 비본질적인 부분과 관련된 분쟁은 민사적 분쟁 해결 수단에 의하더라도 충분히 합리적인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며 "형사사법 잣대를 들이대 최후적·보충적 규제 수단인 국가형벌권 행사를 통해 개입하는 것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원심판결에는 사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