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상대 ISDS 승소…"국민연금, 국가기관 아냐" 정부 공략 통했다
한미 FTA상 '국가기관 조치'로 볼 수 있는지
영국 법원 "국민연금 의사결정, 정부에 종속 안 돼"
- 한수현 기자, 김종훈 기자
(서울=뉴스1) 한수현 김종훈 기자 = 정부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다뤄진 부분은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이에 대해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과 정부가 별개의 법인격을 보유했다는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정부는 전날(23일) 오후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을 상대로 한 ISDS 사건 중재판정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영국 법원이 심리한 중재판정 취소소송에서는 국민연금이 합병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국가기관(당사국)의 조치로 인정해 정부의 배상책임 근거로 볼 수 있는지가 가장 큰 쟁점으로 다뤄졌다.
한미 FTA 제11.1조에서는 상대 당사국의 투자자, 적용대상투자 등에 관해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에 적용된다고 규정하는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국가기관의 조치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정부는 △이 사건에서의 정부 행위는 모두 비공식적 행위로서 한미 FTA의 '국가기관' 행위가 아니며 △엘리엇이나 엘리엇의 투자와 관련이 없고 △국민연금은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단체로서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을 취소 사유로 들었다.
반면 엘리엇은 비공식적 행위 역시 정부 조치로서 봐야 한다고 맞섰다. 비공식적 행위를 한미 FTA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FTA의 취지가 무색해질 거라는 주장이다. 또한 정부 관계자들은 모두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한다는 입장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엇과 관련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연금은 연기금 징수와 배분이라는 헌법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기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법원은 한국 정부 측 손을 들어줬다.
영국 법원은 우선 정부의 비공식적 행위도 한미 FTA 적용 대상으로 볼 수 있고, 정부의 행위는 엘리엇이나 엘리엇의 투자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면서 결론적으로 정부 측이 승소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은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보유한 점 △공적연금기금의 운용이 치안, 국방 등 국가의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 않는 점 △국민연금의 일상적 의사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중재판정 중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임을 전제로 한 판단 부분을 취소했다.
다만 영국 법원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한 행위는 FTA 규정의 '관련성 있는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향후 이 부분은 중재절차 환송심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 2018년 7월 당시 삼성물산 주주로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을 반대했으나 합병이 성사되자,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권 행사 등을 문제 삼아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배경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가 연루된 '국정농단' 의혹과 연관된 부당한 압력 행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약 1조 원 이상의 주가 하락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국제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2023년 6월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정부가 약 690억 원과 지연이자 등 합계 약 1600억 원(올해 2월 기준)의 배상책임을 부담하라고 했다.
정부는 같은 해 7월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간주하고 정부의 '압력 행사'로 인한 손해를 인정한 중재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다음 해 8월 영국 법원은 한미 FTA 해석상 정부가 주장하는 취소 사유는 적법한 사유가 아니라며 각하 판결을 냈다.
이에 정부는 항소했고, 지난해 7월 영국 항소법원은 각하 판결을 뒤집고 정부가 주장하는 취소 사유는 적법하다는 취지로 이 사건을 1심으로 환송했다.
다시 심리한 1심 영국 법원은 취소 사유를 인용해 중재 판정을 일부 취소하고, 다시 중재 절차로 환송했다. 사건이 중재절차로 다시 환송되면서 우리 정부의 1600억 원 상당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기존 중재 판정은 유지될 수 없게 됐다.
한편, 엘리엇은 영국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이번 취소소송 선고 결과에 대해 항소할 수 있게 됐다. 엘리엇이 항소를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허가할지 는 추후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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