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고층빌딩' 법으로 막나…대법 "조례 삭제 적법"에 동상이몽

서울시 "세운4구역 진척 여지"…문체부 "법 제·개정으로 막아야"
"대법 정책적 판단 아냐, 법 개정 가능"…"소급 규제 문제 소지"

서울 종로구 종묘와 세운 4구역 모습. 2025.11.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서울=뉴스1) 서한샘 유수연 기자 = 대법원이 종묘 주변 보존지역 외 공사에도 문화재 영향 검토를 의무화하던 서울시 조례 조항 삭제를 적법하다고 판단하면서 종묘 앞 고층 건물 개발을 둘러싼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 재개발에 진척의 여지가 생긴 것으로 본 반면, 문체부는 관련 법 제·개정으로 고층 개발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서울시의회를 상대로 제기한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중 개정 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앞서 서울시의회는 지난 2023년 9월 문화재 보호 조례 제19조 제5항이 상위법인 문화재보호법보다 포괄적이고 과도한 규제라면서 이를 삭제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조항은 같은 조례에서 정한 국가지정문화재(국가유산)의 보존지역(외곽경계로부터 100m) 범위를 넘는 경우에도 건설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그 보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문화재청장(현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대법원은 이 같은 조항 삭제가 상위 법령(문화유산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문화유산법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범위를 정하는 것에 한정돼 있다"며 "보존지역을 초과하는 지역에서의 지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사항까지 국가유산청장과 협의해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봤다.

이를 두고 서울시는 세운4구역 재개발의 속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세운4구역이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보존지역(100m) 밖인 만큼 규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지난달 30일에는 해당 구역의 높이 제한을 71.9m에서 141.9m까지 완화하는 재개발 계획을 고시했다.

세운4구역 토지주들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다시세운광장에서 국가유산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에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국가유산청이 재개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부당한 행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직권남용 등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1.11/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그러나 조례 삭제가 곧바로 고층 건설 허가로 이어진다고 해석하긴 어렵다. 대법원도 판결문에 해당 조례 조항을 삭제하더라도 현행 문화유산법에 따라 문화유산 보호가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했다.

문화유산법 제12조는 건설공사가 문화유산을 훼손·멸실·수몰시킬 우려가 있거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필요한 때에는 국가유산청장이 건설공사 시행자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같은 법 제13조 제3항에서도 문화유산 특성·입지 여건 등으로 인해 그 외곽경계로부터 500m 밖에서 건설공사를 하게 되는 경우 공사가 문화유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500m를 초과해 범위를 정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문화유산법 제35조 제1항 2호, 시행령을 통해서도 어떤 행위가 국가지정문화유산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면 해당 행위를 하려는 자는 국가유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체부는 대법 판결을 '규제 기준을 법률에서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계기로 해석하며 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당장 전날(11일)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법원은 서울시의 조례 개정 절차가 적법했다고 본 것이지 (세운상가) 개발계획 자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종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문체부가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대법원 판결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앞서 대법원 판결 직후인 지난 7일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종묘를 찾아 "문화유산법, 세계유산특별법 등 관련 법안을 개정하고 필요하면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향후 핵심 쟁점은 국가유산 경관 보호 기준을 어디까지 법률로 명확히 설정할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 판례는 구 서울시 조례 제19조 제5항을 삭제한 것이 상위법인 문화유산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는 법리적 판단이지 정책적·가치적 판단은 아니다"라며 "종로 왕릉뷰 근처 아파트 고도 제한은 상위법인 문화유산법 법률 변경이나 서울시 조례의 변경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세운4구역 등 특정 사안을 막기 위한 소급 규제 등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행정법 전문 변호사는 "문화재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 기준을 정비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특정 사업을 겨냥해 소급적으로 고도 제한이나 건축 제한을 강화할 경우에는 신뢰 보호 원칙과 법률불소급 원칙이 문제될 수 있다"며 "사실상 개별 사건의 결론을 입법으로 뒤집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sae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