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의혹 '스모킹 건' 정영학 녹취록…증거능력 인정된 이유는

법원 "음성 자연스럽고 위·변조 흔적 없어…시간 연속성 유지"
피고인 측 "선별 제출" 반박했지만…"무결성에 영향 없어"

정영학 회계사가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특혜' 관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배임)등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4.1.8/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을 심리한 1심 법원이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피고인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배경에는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이 있었다.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음 파일에는 대장동 사업 진행 과정이 상세히 담긴 데다 관련자들의 목소리가 직접 담겨 있어 사건 초기부터 줄곧 이 사건의 '스모킹 건'으로 꼽혀왔다.

피고인들은 정 씨가 제출한 녹음파일 등이 증거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1심 법원은 해당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장동 민간개발사업자 중 한 명인 정 회계사는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불거진 2021년, 검찰에 다량의 녹취록을 제출했다.

녹음 시기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019년 12월부터 2021년 4월까지로 나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계사는 2021년 9월 26일 녹음 파일 66개가 담긴 녹음기 3개와 USB(이동식저장장치) 1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후 같은 해 10월 1일 통화 녹음파일 17개가 저장된 USB 2개, 같은 달 5일 휴대전화 녹음 파일 44개 및 녹화 파일 1개가 저장된 USB 3개를 추가로 제출했다.

이어 2022년 8월 25일 통화녹음, 음성녹음 및 동영상 파일, 그림 파일, 문서가 저장된 USB 3개도 제출했다.

법원은 1차 제출된 녹음 파일 66개는 원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이후 추가 제출된 녹음 파일은 모두 사본이며 원본과의 동일성·무결성을 확인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해당 녹음 파일들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우선, 재판부는 사건 녹음파일 대화 당사자인 유 전 본부장과 김 씨,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 등이 법정에서 녹음파일을 재생해 청취하고 자신의 음성이 맞으며 대화 상대방과 대화했던 내용도 맞다고 모두 인정한 점을 증거 능력 인정의 근거로 들었다.

또 정 회계사의 의뢰로 녹취록을 작성한 속기사가 "녹취록을 작성할 때 USB에서 작업용 컴퓨터에 복사, 저장하는 과정에서 파일을 편집하거나 조작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녹음파일에 대한 법원의 증거조사 결과에서도 녹음파일에 담긴 대화 당사자의 음성은 자연스럽게 들리고 위·변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으며 시간적인 연속성이 유지되는 등 편집, 조작으로 판단할 만한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검찰청 법과학분석과의 감정에 따라 2, 3차 녹음파일이 인위적으로 편집·조작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정 회계사가 제출한 녹음 파일에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대화 녹음은 포함되지 않았다. 일부 피고인은 재판 과정에서 "정 회계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녹음파일을 선별해 제출한 것"이라고 문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 회계사가 "2015년 압수수색을 당해 휴대전화를 모두 압수당했고 그 이후로 압수수색에 대비해 녹취를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점이 설득력이 있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설령 정 회계사가 선별해 녹음 파일을 제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내용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별론으로 하고 이 사건 녹음파일의 무결성, 원본 동일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고려할 필요가 없는 사정"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조형우)는 지난달 31일 업무상배임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씨와 유 전 본부장에게 징역 8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정 회계사는 징역 5년,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선고 이유에서 정 회계사가 수사기관부터 이 사건 재판 초반까지 배임 범행의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하면서 녹음파일을 제출하는 등 실체 파악의 단서를 제공한 점을 유리한 사유로 봤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