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 감각' 없는 조희대 대법원장[이승환의 로키]
대법원장은 원칙과 정무적 판단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나
- 이승환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21일 오전 9시쯤 대법원 청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등청(登廳)하던 조 대법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사법개혁안'을 묻는 뉴스1 기자의 질문에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사법개혁안) 공론화 과정에서 사법부 의견을 충분히 내겠다."
'사법부 대수술'에 비유되는 사법개혁안에는 대법관 증원과 법관 평가제 개선이 골자로 담겼다. 조 대법원장은 그와 관련해 짧은 입장을 밝혔을 뿐이지만 그 발언을 인용해 보도한 기사는 수십 건에 이르렀다. 사법개혁 논란이 그만큼 증폭한 상태다.
발단은 지난 5일 1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이었다.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된 이 사건의 상고심 결론은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이었다. 원심 무죄를 뒤집은 것이다. 대선을 불과 한 달여 남은 시점에, 사실상 '이재명 후보는 유죄'라고 선언하는 '최고법원'의 결정이 나온 것이다. 대법원이 해당 사건을 접수해 선고하기까지 총 35일이 걸렸다. 이는 올해 상반기 평균(3.1개월)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통령 지지자들과 민주당은 당연히 그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과 가깝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도 (상고심 영향으로) 조 대법원장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밝혔다. 상고심 즉각 심리와 전합 회부는 '6·3·3' 원칙주의자 조 대법원장의 의지였다. 6·3·3은 선거사범 재판의 경우 1심 6개월, 항소심·상고심 각각 3개월 등 총 1년 안에 선고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270조의 규정이다.
이 대통령 상고심 전만 해도, 6·3·3은 사문화된 상태였다. 법관들이 잘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조 대법원장은 취임 초부터 "선거법에 명문화한 6·3·3을 훈시규정으로 해석하는 것 잘못"이라고 천명했다. 왜 그랬던 걸까. 최근 만난 대법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은 2022년, 그러니까 20대 대선 당시 발생한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대선 사건을 계속 끌다가 다음 대선(올해 6월, 21대 대선) 전에도 결론 내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조 대원장의 지론이었다."
요즘 법원 내부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정무 감각이 부족했다'는 목소리가 부쩍 늘었다. 상고심 당시 이 대통령 당선이 예측 범위에 있었는데도 눈치 없이 신속 심리 의지를 현실화했다는 평가다. 그러다 조 대법원장 개인은 정치권의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사법부는 '대수술'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조 대원법장은 지난 2013년 10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자질·도덕성 논란으로 낙마하면서 후보자로 낙점된 인물이다.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고 '문언주의자'라는 명성이 자자했다.
민주당 의원들조차 조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인품이 훌륭하다" "제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고 극찬했다. 결국 조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은 역대 네 번째로 높은 90.4%의 찬성률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자로 추천한 조 대법원장의 취임 과정에 민주당의 '초당적 지지'가 있었던 셈이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렸다는 걸까. 조 대법원장이 원칙주의자이고 정무적 감각이 없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을지 모른다. 다만 사법부 수장에게 요구되는 덕목과 자질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과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정무적 판단을 하다가 재판 거래 의혹을 포함한 '사법농단 파동'(2017년)을 일으켰던 전례가 있다.
원칙과 정무 감각이 공존할 수 없는 순간에, 사법부 수장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사법부 역사에서 재평가받게 될 문제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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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어 단어 로키(lowkey)는 '사실은' '은근히' '조용히' 등을 뜻합니다. 최근 영미권 MZ세대들 사이에선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은근히 표현할 때' 쓰입니다. 솔직하되 절제된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