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구형 김범수 무죄 이유 "진실왜곡"…법원, 檢 별건수사 공개비판

'이준호 前부문장 진술' 공소사실 부합하는 사실상 유일 증거였지만
"'별건' 압박에 진술 바꾸고 이 건 기소 안돼"…檢 항소 여부 주목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심경을 밝히고 있다. 2025.10.2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강서연 기자

"극심한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 "진실 왜곡" "부당한 결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가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등에 대한 선고를 하면서 김 창업자 등을 재판에 넘긴 검찰을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카카오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SM엔터테인먼트(SM엔터)에 대한 시세조종을 위해 공모했다는 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을 검찰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제시했지만 이 진술이 검찰의 압박에 의한 허위 진술로서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낳았다는 게 재판부의 지적이다.

김 창업자의 경우 지난 2023년 2월 SM엔터테인먼트(SM엔터) 인수 과정에서 경쟁자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엔터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 원보다 높게 설정·고정해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전 부문장은 김 창업자 등 피고인들이 하이브의 공개매수 저지 의도로 SM엔터 주식의 시세를 공개매수가격 이상으로 인상·고정시킬 목적으로 SM엔터 주식 매수에 관한 공모를 했다고 상세하게 진술했다. 그 중 일부 진술은 시세조종을 공모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는 이 전 본부장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한 진술이라는 점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어 증거능력이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다른 이 전 본부장의 진술 또한 중요 부분에 있어 일관되지 않고, 경험칙과 상식에 반하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적지 않으며, 증거를 통해 알 수 있는 당시의 객관적 상황에도 반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봤다.

재판부는 "그 지위와 이해관계, 수사 압박, 진술 번복 경위와 그 이유 등에 비추어 허위의 내용을 진술할 동기나 이유도 충분하였다고 보여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이날 선고 막바지에 이 전 부문장의 진술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는 "이준호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이준호는 별건에 관한 수사과정에서 극심한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했고 그것이 이런 결과에 이르렀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2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자본시장법 위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5.10.21/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이 전 본부장이 별건으로 압수수색을 당한 이후 추가 수사와 재판에서 벗어나고자 이전 진술을 번복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을 했을 것이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가 언급한 '별건'은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고가에 인수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 전 본부장이 기소된 건이다. 이 전 본부장은 이 건으로 2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이 전 본부장이 "(검찰 수사의) 종국적인 목표 지점이 김범수임을 인식하고 검찰에서 그에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하면 자신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거나 기소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언급했다.

당초 이 전 본부장은 금융감독원과 경찰에서 모두 6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이 사건과 관련해 모든 혐의를 부인하다가 별건 관련 압수수색 이후인 2023년 11월 검찰 조사에서 기존 진술을 번복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한다.

이 전 본부장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신청, 그 결과 이 사건에서 기소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특이한 점은 카카오에서 한 SM엔터 매수행위 시세조종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행위자로 관련된 카카오엔터에 관해서는 물량 확보 목적이라며 시세조종과 무관하다는 진술을 했다"며 "모순된 진술"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동건과 관계 없는 별건을 강도 높게 수사해서 압박하는 수사 방식은 이 사건에서처럼 진실을 왜곡하는 부당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 수사 주체가 어디든 이제는 지양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펀드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로 기소된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에 대해서만 유죄(징역 3년·집행유예 4년)가 선고되고 김 창업자를 비롯한 다른 피고인들과 법인들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창업자에 대해 징역 15년을 비롯해 다른 피고인 6명에 대해 각각 징역 7~12년을 재판부에게 선고해달라고 한 검찰의 구형량과는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이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재판부의 강도 높은 비판에 향후 검찰이 공소 유지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pej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