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이름의 무게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참석하고 있다. 2025.5.26/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26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장으로 참석하고 있다. 2025.5.26/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예전의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의결문에 들어갈 한 문장을 두고도 몇 시간을 치열하게 논의했다. 뜻이 곡해될 세라 의결 내용에 들어갈 한 줄을 정리하기 위해 단어의 의미를 놓고 토론했고, 이 과정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그렇게 논의가 쌓인 끝에야 비로소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뜻'이 세상에 나왔다.

대표회의가 열리는 날, 사법연수원 내 회의장과 멀찍이 떨어진 대기실에 모인 기자들은 "논의가 마무리되고 의결문을 정리 중이다"라는 소식에 반색하다가, 몇시간이나 이어지는 '정리'에 실망이 섞인 한숨을 쉬고는 했다. 의결 내용을 받아 기사를 송고하고 연수원을 나서면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분과위원회'가 토론회 한 번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그것이 곧 '전국 법관'의 뜻이 되어 세간에 퍼진다. 치열한 논의도, 의사의 합치도 없다.

전국법관대표회의 재판제도 분과위원회는 지난달 25일 대법관 수 증원안과 대법관 추천방식 개선안과 관련해 토론회를 열었다. 논의 결과를 포함한 연구 결과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보고될 방침이다.

정식 발의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토론회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이름을 걸고 언론에 배포됐다.

토론회 이후 전체 법관의 의견을 모으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내부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감지됐다.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절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회의 이미 지난 5월에 절차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5월 8일 회의 개최를 위한 투표를 진행했지만 예정된 오후 6시까지 회의 소집에 필요한 26명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자 별다른 이유 설명 없이 투표 기한을 9일 오전까지 연장해 가까스로 정족수를 겨우 채웠다. '꼼수'를 써 무리하게 회의를 열었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유력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상고심 판결 관련 논의를 하려 했고, 언론 배포 보도자료에서는 이 대통령에 대한 부분만 삭제해 논의 내용을 숨기려 했다는 비판도 불거졌다. 이 내용은 언론뿐 아니라 법원 내부에도 제대로 공지되지 않아 일부 판사가 법관 대표에게 항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대표성'에 있다.

3000명이 넘는 법관 중 약 120명만이 대표로 참석하고,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는 경우가 많아 회의마다 구성과 논의 흐름이 달라진다. 법관 대표 선출이 일정한 기준 없이 이뤄진다는 것은 오래된 지적이다.

결국 회의에 '가고 싶은 사람'과 '가기 싫은데 떠밀린 사람'이 전국법관대표의 이름을 걸고 회의에 참석하고, 결과적으로 '가고 싶은 사람'의 뜻만 남는 구조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분과위원회가 대표 회의의 이름을 빌려 의견을 내는 것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토론회가 전국법관대표회의 전체가 아닌 분과위 차원에서 열린 이유가 앞서 정족수 문제로 임시 회의를 간신히 열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대표회의 공지에는 "정족수가 필요한 회의가 아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고, 온오프라인 병행으로 열린 이번 토론회 참석자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 명의'로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분과위원회가 맡은바 주제에 따라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으로 어떻게 말하는가는 정확하게 해야 할 문제다.

결국 이번 토론회와 관련된 지적은 이번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계속해서 받고 있는 비판의 연장선에 있다. 바로 '불투명함'이다. 숨기거나 꾸미는 순간 신뢰는 사라진다.

사법행정권남용 사태에서 속에서 일어난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기구가 그 취지와 무게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절차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절차가 흔들리면 '전국법관대표회의'라는 이름이 지닌 상징성과 신뢰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사소한 절차 하나, 단어 하나를 두고도 깊이 논의하던 초심을 잃지 않을 때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비로소 '이름값'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