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법원장 청문회 강행…법조계 "말도 안 되는 시도" 비판

국회 법사위, 조희대 대법원장 긴급 청문회 의결
법조계 "회동설 제기한 유튜버 불러야…정치 수단 이용" 비판도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종 국제 콘퍼런스’ 2일차 일정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22일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 개입 의혹 관련 긴급 현안 청문회' 실시계획서와 관련 증인·참고인 출석의 건을 의결했다. 2025.9.23/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여당 주도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추진하면서 법조계와 법원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를 매개로 재판 결과에 대한 정치적 공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문회가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사위는 전날(22일)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조 대법원장에 대한 긴급 현안 청문회 실시 계획서를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 주도로 의결했다.

대법원이 지난 5월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전례 없는 속도로 전원합의체를 통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에 대해 청문회에서 따져묻겠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 조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정상명 전 검찰총장, 김건희 여사 모친의 측근인 김충식 씨가 비밀리에 회동을 갖고 이 대통령 선거법 사건의 처리 방향을 논의한 뒤 해당 사건을 파기환송시켰다고 의심하고 있다.

청문회는 오는 30일 오전 10시에 열리며 조 대법원장의 출석도 요청됐다. 증인으로는 조 대법원장을 비롯해 오경미·이흥구·이숙연·박영재 대법관과 윤석열 전 대통령 사건을 심리 중인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이 이름을 올렸다.

조 대법원장에 대한 국회의 청문회 시도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5월에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으나 조 대법원장을 비롯한 증인들은 불출석한 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의 이번 청문회 참석 여부와 관련해 "증인 출석 요구서는 개인에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장 개인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출석 요구서가 (대법원장에게) 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조 대법원장의 출석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분위기다.

한 법조인은 "의혹 제기를 통해 재판의 결과를 갖고 논란을 일으키는 청문회에 응하기 시작하면 사법 독립은 끝"이라며 "거대 정당이 마음에 안 드는 판결을 했다고 판사가 국회에 불려 나가는 전례가 생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5월 청문회 당시 조 대법원장 등은 "재판에 관한 청문회에 법관이 출석하는 것은 여러 모로 곤란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전달하고 불출석했다.

법원 내부에선 대법원장에 대한 거듭된 정치 공세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사법 행정이나 개인 비위가 아니고 재판을 가지고 대법원장을 청문회에 부르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판사도 "4인 회동설의 진실을 밝히려면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나 유튜버를 불러야 한다"면서 "대법원장과 법관을 물어보면 뭐가 나오겠느냐. 엉뚱한 사람을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른바 '4자 비밀 회동설'을 최초로 제기했던 여권 성향의 열린공감TV 관계자는 증인 명단에 넣지 않았다.

지방법원의 부장판사 역시 "'4인 회동설'이 근거가 있다면 모르겠으나, 단서도 없이 의혹만 갖고 마치 그것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사법부를 몰아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설득이 안 되는 법리로 판결을 했다거나 판결 내용이 틀렸다면 누구나 비판할 수 있다"며 "그러나 내용이 아닌 절차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모든 재판이 다 청문회 대상이 될 텐데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만약 조 대법원장 등이 청문회에 불참할 경우 국회가 출석을 강제하기 위해 구인장을 발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아직 구인장에 대해 검토할 단계가 아니라고 밝혔다.

한 부장판사는 "너무 나갔을 때는 중도에 있는 국민들이 반발해 역풍이 불 수 있기 때문에 구인까지는 안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사법부를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법사위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의결한 것과 관련해 사전 협의한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사전에 상의는 안 됐고 법사위 차원에서 의결이 된 것으로 사후에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한 법조인은 "(개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협의 없이 대법원장 청문회 카드를 던진 것이라면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