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광석화 개혁과 과속운전
(서울=뉴스1) 김현 사회부장 = 어릴 적 시골에 살던 나에게 현대차 '엘란트라'의 TV광고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광고를 통해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속도 무제한'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광고는 '아우토반. 속도는 무제한, 성능은 최대한'이라는 내레이션 속에 엘란트라가 포르셰 911과 레이싱을 벌여 승리하는 내용이다. 세월이 흘러 알았지만 두 자동차의 성능 비교를 하면 그야말로 '과장 광고'였다. 속도의 짜릿함으로 포장한 광고가 순간의 착각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지난 5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은 검찰 및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말처럼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고 있는 분위기다.
당정은 78년 만에 검찰청을 없애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오는 25일 처리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 취임 114일 만이다.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리는 개혁도 추석 전에 마무리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민주당의 이같은 제도 개혁을 두고 속도전을 넘어 '과속운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내란사건을 전담하는 특별재판부 신설 등 국민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굵직한 제도들이 신중한 검토 없이 속도에만 치중한 채 추진되고 있어서다.
과속 운전은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게 한다. 12·3 비상계엄에 대한 엄정한 단죄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개혁의 깃발만 보고 내달리는 현재의 상황은 자칫 법치주의의 안전장치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논의는 그 같은 우려의 대표적인 사례다. 재판은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의 고유 권한인데, 정치가 재판부 지정에 관여한다면 법원의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도 마찬가지다. 경찰과 중수청 등 수사 현장에서 허점이 드러날 때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다면 범죄에 대한 대응력은 떨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제도 설계에 환호할 사람은 범죄자밖에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과거를 돌아보면 개혁을 앞세운 여권의 과속운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은 15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었지만, 다수 의석을 믿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을 밀어붙이다 국민적 동의를 잃었다. 그 결과 3년 뒤 치러진 2007년 대선에선 대패해 정권을 넘겨줬다.
절대 다수당이었던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도 비슷했다. 이른바 적폐청산 작업과 함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세운 검찰개혁 등을 강력하게 밀어붙였지만, 그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5년 내내 이어졌던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에 대한 피로감은 부동산값 폭등에 성난 민심과 맞물려 87년 체제 이후 처음으로 5년 만에 정권을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속도만 앞세운 개혁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역사가 보여주는 셈이다.
더욱이 지금 국민들은 민생의 무게에 허덕이고 있다. 가뭄과 홍수 피해로 서민의 생계가 위협받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강화로 기업들은 심각한 경영 위기를 호소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이 검찰개혁, 사법개혁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 국민을 외면한 정치로 비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의 방향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과정이 국민적 합의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개혁은 오래가지 못할 수 있다.
개혁은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르고 제대로 된 길을 요구한다. 국민의 눈에 민생보다 권력 다툼이 우선인 정치로 보이는 순간, 그 개혁은 신뢰를 잃고 '과장 광고'로 낙인찍힌다. 역사가 이미 경고했듯, 과속운전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사고로 끝나는 법이다.
또 한 가지. 속도 무제한으로 알려진 독일의 아우토반은 1차로를 추월 전용으로 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준수한다. 그 때문에 아우토반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고속도로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속도감 있는 개혁에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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