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계좌 이용해 자금세탁…대법 "금융실명법 위반" 첫 판결

허위 법인 설립해 피해금액 송금 받아 수수료 챙겨
2심 "금융실명법 위반 무죄"→대법, 유죄취지 파기환송

대법원 전경 ⓒ 뉴스1

(서울=뉴스1) 이세현 기자 = 자신이 운영하는 법인 명의 계좌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 이는 금융실명법으로 처벌되는 '타인 실명 거래'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5명에게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 혐의는 유죄를 선고하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법인의 대표자가 형식적으로는 법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범죄 등을 위해 금융거래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경우 그 금융거래는 '타인의 실명으로 한 금융거래'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금융거래에 해당하는지는 법인의 설립 목적과 경위, 금융거래 계좌의 개설 경위와 이용 현황, 법인의 실제 운영 현황과 방식, 금융거래 대상이 된 자금의 조달방법 및 사용내역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범죄를 목적으로 각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 계좌를 개설한 후 개설된 해당 계좌를 수단으로 삼아 범죄수익금의 자금세탁 등 다수의 금융거래를 했다"며 "피고인들이 합법적인 업무나 활동을 한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이지도 않고, 금융거래에 따른 이익은 법인이 아닌 피고인들에게 귀속됐음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법인의 명의를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금융거래를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으므로, 그 금융거래는 모두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 부분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에는 금융실명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A 씨 등은 상품권 매매업체로 가장한 허위 법인을 설립하고 법인 명의로 개설한 계좌를 인터넷 도박 등 범죄조직에 제공한 뒤, 이 계좌로 피해자들이 송금한 돈을 현금으로 인출해 범죄조직에 전달하고 수수료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은 "불법적인 자금을 현금화해 전달하는 자금세탁 범행은 범죄를 조장하고 탈세를 비롯한 다양한 범죄를 용이하게 하는 것으로, 사회적인 폐해가 커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A 씨에게 징역 4년, B 씨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C 씨 등 3명에게는 각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심은 "피고인들이 본인이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회사 명의의 계좌를 사용한 행위는 '타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이 유죄로 인정한 혐의 중 일부를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피고인들에 대한 각 금융실명법위반죄 중 일부에 무죄를 선고하나, 금융실명법위반죄와 처벌 목적이 유사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위반죄로 처벌하는 이상 가벌성 및 비난 가능성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주범인 A 씨와 B 씨에게 1심보다 높은 각 징역 5년, 3년을 선고했다. C 씨 등 3명은 1심의 형량이 유지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s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