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검찰 개혁 의지 재천명…'속도 조절' 여지는 남겨

'취임 30일' 이재명 대통령 "수사·기소 분리 이견 없어…제도 안착까지 한참 걸릴 것"
수사 쇼핑·중복·적법성 논란 부른 '수사권 조정' 등 고려해 속도 조절 필요성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이기림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 개혁의 핵심인 수사·기소 분리와 관련해 "이견이 없다"며 의지를 재천명하면서도 속도 조절의 가능성은 남겨뒀다. 검찰개혁 방안이 일선에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검찰 개혁의 하나로 추진한 검경 수사권 조정이 속도전 끝에 시행됐다가 수사기관의 수사 중복 문제 등 부작용을 초래한 전례를 감안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3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과 관련해 "동일한 주체(검찰)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다는 점이 문제라는 건 이견이 없는 것 같다"며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건 검사가 해야 하지만 수사를 누구한테 맡길 거냐는 논쟁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든 가진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모두 폐지하고 검찰을 기소와 공소유지만 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일주일이 지난 지난달 11일 이 같은 내용의 검찰 개혁 4법안을 발의했다. 구체적으로 △검찰청법 폐지 법안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 법안 △공소청 신설 법안 △국가수사위원회 신설 법안이다.

범여권의 의석(189석)이 절반을 훌쩍 넘는 데다 이 대통령이 검찰개혁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없어 수사·기소 분리는 아무리 늦어도 이 대통령의 임기 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 대통령은 제도가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언급하며 속도전을 예고한 여당과 달리 속도 조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앞서 박찬대 민주당 당 대표 후보는 2일 국회 공정사회포럼이 주최하고 김용민·민형배·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주관해 국회에서 열린 검찰개혁 토론회에서 "검찰청을 9월까지 해체하겠다"며 "이번에는 끝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후보와 함께 당 대표에 도전하는 정청래 후보도 "검찰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며 "국민 여러분께서 추석 귀향길 자동차 라디오 뉴스에서 검찰청이 폐지됐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뉴스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추석 전에 하자고 당대표 후보들이 열심히 말하는 것 같다"면서도 "(추석 전) 제도 자체의 얼개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에서 하면 저야 어쩔 수 없지 않지만 국회를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완벽한 제도가 정착되기까지는 한참 걸릴 것"이라고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법조계에서도 검찰개혁 법안의 입법화가 불가피하더라도 과거 수사권 조정 전례가 있었던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21년 시행된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의 지휘권을 폐지하고 그전까지 모든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6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공직자범죄·선거범죄·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범죄)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후 2022년 5월 민주당 주도로 관련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검찰의 직접 수사 가능 범위는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또 축소됐다.

다만 검찰의 수사권 범위가 쪼그라들면서 그 반대급부로 일선 경찰 수사관들의 업무가 가중했고 사건 처리 지연도 가속화했다.

또 검찰과 경찰, 공수처 등 수사기관 간 담당 수사 범위가 구체적으로 구분되지 않아 지난 12·3 비상계엄 초기 세 기관이 모두 계엄 수사에 뛰어들면서 수사 경쟁이 과열되고 계엄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을 선택한다는 '수사기관 쇼핑 논란'도 불거졌다.

결국 경찰과 공수처가 손잡고 공조수사본부를 꾸려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했지만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이 공수처법에 규정되지 않아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공수처가 청구해 발부받은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영장과 관련해 법원이 공수처의 수사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구속을 취소한 것이다.

이처럼 수사권 조정의 부작용이 확인된 만큼 후속 검찰 개혁 방안인 수사·기소 분리도 중대 범죄 수사 공백 등 역기능을 두루 고려해 시간을 두고 안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부장검사는 "검찰의 직접수사권 폐지는 불가피한 상황이라 내부에서도 수사·기소 분리를 거스르기 힘들다는 분위기"라면서도 "수사기관과 학계,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급격한 제도 개혁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논의한 후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mrl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