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마약 투약해도 '집유'…낡은 양형기준과 '헤어질 결심'은 언제쯤

사진은 통조림 속에 있던 필로폰 총 3.54kg. (서울경찰청 제공) 2022.10.26/뉴스1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마약류관리법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돼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마약과 '헤어질 결심'을 늘어놓는다. 마약중독자의 자발적·적극적인 치료 의사 표시는 예나 지금이나 형량을 줄일 수 있는 주된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명이 무색하게도 열 명 중 네 명은 다시 법정으로 되돌아온다. 대체 왜 그럴까.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1만2387명이다. 역대 최다였던 2020년(1만2209명)을 넘어선 수치다. 마약사범 검거율이 높아진 데에는 지난해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걸려도 대다수는 벌금 아니면 집행유예. 대량범이 아닌 이상 징역 1~2년에 그친다. 최근 마약 범죄를 저지른 유명인들이 잇따라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면서, 양형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지난 2011년 마약범죄 양형기준을 제정한 후,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 개정을 했지만 대량범에 대한 형량기준을 올렸을 뿐, 마약류 투약 및 단순 소지와 매매·알선, 수출입·제조의 형량 범위와 감경·가중 요인 등은 사실상 10년째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범죄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근거해 현재의 양형기준이 만들어진 셈이다.

현재 마약범죄는 투약·단순소지, 매매 알선, 수출입 등 4가지로 유형을 나눈다. 이후 각각의 유형을 환각물질, 대마, 향정 등 마약의 종류로 나누고, 기본형과 감경형, 가중형의 범위를 다르게 적용한다. 이후 감경요소와 가중요소가 있는지를 고려해 형량을 정한다.

그러나 대량범을 제외한 나머지 유형의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부터 시작된다. 또 범행가담 또는 범행동기에 참작할 사유가 있거나, 투약 단순소지 등을 위한 매수 또는 수수 역시 특별히 감형할 요소로 설정해 놓고 있다. 대부분의 매매 사범들은 적용되는 요소이기 때문에 형량을 대폭 감경받게 된다.

여기에 초범, 수사협조 등 주요 긍정사유가 2개 이상 존재할 경우 집행유예 판결이 권고된다. 두 차례 마약범죄를 저지른 가수 돈스파이크(김민수)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유다.

김씨는 100g의 필로폰을 투약, 유통했으나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관련 수사에 협조한 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계도할 것을 다짐하고 재범의 억제를 방지할 만한 사회적 유대 관계가 형성된 점, 김씨와 지인들이 제출한 반성문 등이 모두 감경사유가 됐다.

김씨처럼 감경사유가 적용돼 지난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람은 마약사범 4747명 중 2089명(44.0%)이다. 같은 기간 실형은 2273명(47.9%)으로 나타났다. 그중 징역 10년 이상의 중형이 나온 판결은 20명(0.4%)에 불과했으며, 1년 이상 3년 미만의 징역형이 1410명(29.7%)로 가장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교도소에 있는 마약 투약자들은 반성은커녕 마약 판매자가 되어서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수감 기간 동안 친해진 '감방 동기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판매망을 공유받는다고 한다. 다시 걸려도 형량이 1~2년에 불과하니 재범률도 높다.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약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게 먼저라고 조언한다. 마약 범죄의 형량을 강화해 '경각심'을 주고, 사회적 의제로 꺼내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지난해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 또한 "(마약범죄 양형기준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양형기준 개정 추진 방침을 시사했다. 물론 그 후에도 마약 사범들이 마침내 어떤 결심을 하고 교도소를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