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테크 시대③]해외업체 국내시장 '공습'…토종 안보이는 '이유 있네'

판결문 비공개·非변호사 겸업금지·직역단체와 갈등…장애물 산적
헌재 '로톡' 판결 분수령될 듯…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이 판사를 대신해 판결을 내리고 변호사 대신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해 고소장을 직접 작성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금융이 IT 기술과 접목하면서 핀테크(FinTech) 서비스로 발전한 것처럼 법률서비스 역시 리걸테크(LegalTech)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리걸테크 산업은 각종 규제와 변호사단체와의 갈등으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해외의 경우 막대한 투자에 힘입어 우리와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뉴스1>은 리걸테크 산업의 현주소와 리걸테크가 국내에서 조화롭게 자리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들여다 봤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정혜민 최현만 기자 = "해외 리걸테크 기업이 우리나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규제만 없애주면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도 사업하기 훨씬 수월할 거예요."(A 리걸테크 기업 관계자)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 속에서 리걸테크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해외 리걸테크 기업들은 이미 몸집을 키워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법률시장에서 지배력을 높여나가고 있다.

정부도 해외 리걸테크 기업들이 국내 리걸테크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토종 리걸테크 기업들은 아직 걸음마 단계 수준으로 성장도 더딘 편이다. 각종 규제와 변호사단체와의 갈등으로 인해 성장에 필요한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니콘 된 해외 리걸테크, 세계 시장서 승승장구…우리는?

21일 시장조사기관 트랙슨(Tracxn)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에는 리걸테크 분야 유니콘 기업이 총 9곳 이상 존재한다. 유니콘이 될 잠재력을 가진 이머징(Emerging) 유니콘까지 포함하면 총 25곳에 이른다.

이들 기업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에 20곳, 유럽에 3곳, 아시아에 2곳 분포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로톡이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하는 '예비 유니콘'으로 선정되는데 그쳤다.

막대한 투자에 힘입어 덩치를 키운 해외 리걸테크 기업들은 속속 해외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해외 리걸테크 기업들의 국내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일부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 본사를 둔 '렉시스넥시스'(현재 영국-네덜란드계 기업에 인수됨)는 세계 최대 판례 분석 서비스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이 기업은 1970년에 설립됐는데 2008년에는 우리나라에, 2019년 기준 총 150개 국가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언론사 톰슨 로이터가 소유한 판례 분석 업체 '웨스트로'는 2008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2012년에는 국내 대표 법률 포털 로앤비를 인수하며 한국 사업을 확대했다. 웨스트로는 약 60개국에 진출했다.

국내와 글로벌 법률시장을 해외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리걸테크 기업의 해외 진출 사례는 전무하다. 언어적 한계에 더불어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국내 성장에서도 한계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1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2022.3.14/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판결문 비공개·변호사법·직역단체와 갈등…걸림돌 '첩첩산중'

리걸테크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법률 관련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미국 등 리걸테크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뒤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AI가 학습하는데 필요한 판결문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판결문을 즉시 실명 공개하는 미국,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대법원판결의 3% 수준, 하급심의 경우 0.003% 수준의 판결문만 공개하고 있다.

그마저도 AI가 학습하기 어려운 PDF 파일에, 비실명화를 거쳐 학습 가치가 떨어진다. 또 판결문 1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있어 머신러닝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이 부담된다.

2023년부터는 민사·행정·특허 사건은 미확정 판결서도 공개하기로 제도가 바뀌었다. 하지만 제도 시행을 위한 예산이 충분치 않은데다 형사 사건은 미확정 판결서 공개 범위에서 제외됐다.

변호사와 비(非)변호사의 변호사 업무 동업을 금지하는 현행 변호사법도 리걸테크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로 꼽힌다. 동업 결과 발생하는 보수나 이익의 분배도 금지된다.

예를 들어 변호사가 아닌 AI 기술자가 변호사와 법률문서 생성 프로그램 서비스를 제공하면 변호사법에 저촉된다. 리걸테크 분야에 한해서 예외규정을 두는 법안도 발의된 적이 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당분간 법 개정은 어려워 보인다. 일부 국가들은 관련 규정을 완화하는 모습이나 공공적 성격이 강한 변호사의 독립성 문제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해당 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

직역단체와의 계속되는 충돌도 극복해야 할 숙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이 변호사법에서 금지한 '법률 브로커' 역할을 한다고 봤다.

2015년 대한변협, 2017년 서울변회, 2020년 직역수호변호사단이 로톡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검찰과 경찰에서 모두 무혐의 결론이 났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5월 변호사 광고 규정을 개정해 로톡과 같은 플랫폼에 광고를 하는 변호사들을 징계하기 시작했다. 로톡은 이런 조치가 과도하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 리걸테크 업체 관계자는 "미국은 리걸테크 업계에 몇조 단위의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미미하다"면서 "시장이 작은 데다 로톡-변협 이슈로 리걸테크 업계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5일 서울 서초구 대한변호사협회. 2021.8.5/뉴스1 ⓒ News1 이성철 기자

◇로톡-변협 헌재 소송이 '분수령'…정부 "로톡 등 위법아냐"

업계는 올해 중 나올 헌법재판소의 로톡-변협 소송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로톡이 국내 리걸테크 1위 기업인 만큼 헌재 결정이 로톡뿐만 아니라 리걸테크 업계 전반의 '규제 강화'와 '완화'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로톡의 손을 들어줬다. 로톡이 위법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법무부는 이런 유권해석을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 헌법재판소에 전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경찰과 공정위는 로톡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지난해 법무부 산하 리걸테크TF를 출범시키고 제도개선을 연구하고 있다. 다만 당장 규제 완화를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도 정부가 아닌 법원 소관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해외에서의 리걸테크 출연, 기존 법과 충돌, 충돌 시의 법적 해석과 관련 법 개정 흐름 등을 선제적으로 연구 및 검토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스타트업·기술기업 지원 사업을 통해 리걸테크 기업을 돕고 있다. 로톡이 예비유니콘, 법률문서 작성 시스템 '아미쿠스렉스'·판결문 검색 서비스 '엘박스'·'까리용'·'케이스노트'가 팁스(TIPS·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 기업에 선정됐다.

팁스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 창업 투자 프로그램으로 민간 투자사와 정부가 공동으로 유망 기술창업 스타트업을 발굴해 연구·개발(R&D)과 국내·외 사업화를 위한 자금을 지원해주는 민간투자주도형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다.

대한변협은 최근 변호사 소개 플랫폼 '나의 변호사'를 내놨다. 일종의 공공 플랫폼으로 일부 법률 플랫폼의 등의 시장 지배를 견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서울변회는 청년변호사를 대상으로 케이스노트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 관련 업체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사건위임계약서 전자 문서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리걸테크가 국내에서 발달하기 위해서는 각 로펌이나 리걸테크 기업들이 관련 기술에 투자할 유인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며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hemingwa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