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②] 양육비 미지급 아빠 신상공개, 명예훼손일까
'배드파더스' 운영자 명예훼손죄 고발…14일 국민참여재판
"아이 생존권 지킬 '공익 목적'" VS "개인 비방·명예 훼손"
- 박승희 기자,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박승희 김규빈 기자 = # B씨의 전 남편은 월 8000만원을 버는 대형 로펌 변호사다. 하지만 그는 양육비 지급 판결을 4년간 외면해왔다. 2억4000만원이 밀렸다. 그에겐 3달치 월급밖에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B씨와 그의 딸에게는 간절한 생활비였다. 결국 B씨는 남편에게 "배드파더스(bad fathers)에 신상을 제보하겠다"고 통보했다. '법대로' 할 때는 코웃음 치며 법망을 피해왔던 전 남편은 '신상공개' 한 마디에 몇 년간 미뤄온 2억4000만원을 단번에 지급했다.
B씨와 같은 경험을 가진 수백명의 한부모들이 양육비 미지급 배우자 신상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를 찾았다. 그들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결국 전 배우자의 신상공개를 택했다. 범법 소지가 있는 행위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뻗는 것은 법으로는 전 배우자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배우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할까. 허점투성이 양육비 제도의 문제점을 알린 '배드파더스' 고소사건이 이달 국민 앞에 선다. 배드파더스 측이 "'아빠의 초상권'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돼야 할 가치"라는 주장을 하고 나선 가운데, 배심원들과 법원이 이를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창열)는 오는 14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 활동가 구본창씨와 전모씨를 대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연다. 배드파더스에 양육비 미지급으로 웹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비양육자 3명이 검찰 측 증인으로, 이들 중 1명의 전 배우자인 양육자 A씨 및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가 변호인 측 증인으로 참석한다.
◇배드파더스 "악성 미지급 해결과 아이들 생존 위한 마지막 수단"
2018년 7월 설립된 사이트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지급의무를 지키지 않는 부모들의 사진과 이름, 직장 등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공간이다. 양육비 지급이 확인되면 리스트에서 지운다. 신상이 등록된 400여명 중 현재까지 111명의 양육비 문제가 해결돼 신상이 삭제됐다.
운영자들은 한부모 가정을 이룬 익명의 활동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다.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 나은 아이들)들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돕는 일을 해온 구씨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서 제보를 받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이름이 알려진 구씨는 신상공개 아버지들로부터 수차례 고소당했다.
배드파더스 측은 "대다수 제보는 법률이 정한 지급강제절차를 모두 거친 뒤에도 양육비를 받지 못한 악성 미지급 사례"라며 "제보자가 최후의 수단으로 형사절차상 위험을 감수하고 어쩔 수 없이 신상공개를 택한 것"이라며 신상을 밝힌 것이 아이들의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라 주장해왔다.
현행법만으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미지급 상황에 아이들의 생존권을 위해 부득이하게 이뤄진 조치란 것이다. 배드파더스 측은 "가장 큰 바람은 이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양육비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법안이 마련되면 사이트 문을 닫겠단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사건 핵심 쟁점은 '공익목적' 유무…인정되면 죄 요건 '비방목적' 부정돼
정보통신망법 제 70조는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구씨 등이 받는 혐의다.
하지만 구씨 측은 사이트에 신상정보를 게시한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비방할 목적이 부정돼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내 양육비 미지급 실태에 비춰볼 때 배드파더스에 적시된 내용은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이란 주장이다. '사회 여론형성 및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으로서 대법원이 설시(說示)한 바와 같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내용이란 것이다.
실제 여성가족부가 올해 발표한 '2018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73.1%)이 '양육비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지급 이행을 위한 강제 조치도 미약하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대법원에서 '개인의 사적인 신상에 관하여 적시된 사실도 사회적 활동에 대한 비판 내지 평가의 자료가 될 수 있다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도 구씨 측은 내놓고 있다.
구씨 등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생긴 이래로 100건이 훌쩍 넘는 실제 해결 사례가 있었고, 양육비 미지급 사실과 제도의 미비를 알리는 자료로 사용돼 대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냈다. 결국 관련 법안까지 발의하게 됐다는 사례도 근거가 됐다.
특정 개인을 향한 가해나 비방의 목적이 담긴 표현이 아닌 양육비 미지급으로 생존권을 위협받는 양육자와 아동의 권리 확보를 위한 '집단행동'으로 봐야 하고, 양육비 지급의무를 고의적으로 회피하는 이들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이뤄져 사회상규상 허용될 수 있는 정당행위란 취지다.
피고인 측을 대리한 이은영 법무법인 숭인 대표변호사는 "이 사건은 국가가 아동의 생존과 존엄을 지킬 의무를 다 하지 못해 개인이 직접 해결에 나선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 재판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의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seungh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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