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과거사 국가배상청구권에 소멸시효 적용 위헌"(종합)

"법적 안전성이 피해자 배상청구보다 중요치 않아"
피해자, 국가배상청구 기각한 판결 재심청구 가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 회원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긴급조치 등 과거사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18.8.30/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군사정권의 고문·조작 등 과거사 사건 재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에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중대한 인권침해·조작의혹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청구권은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게 특별히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헌법재판소는 30일 민법 제166조 제1항 등에 대해 이모씨 등이 낸 9건의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일부 위헌을 결정했다. 군사정권의 불법 체포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해 국가보안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유죄를 받은 이들의 과거사 사건과 관련한 판단이다.

민법 해당 조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지는 국가가 오히려 국민에 대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기본권임을 고려할 때 국가배상청구권의 시효소멸을 통한 법적 안정성 요청이 국가배상청구권 보장 필요성을 희생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국가가 공무원들의 조직적 관여를 통해 민간인을 집단희생시키거나 장기간 불법구금·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유죄판결을 하고 사후에도 조작·은폐를 통해 진상규명을 저해했음에도, 그 불법행위 시점을 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는 건 손해의 공평한 부담이란 손해배상제도 지도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청구인들 심판청구는 관련 법조항들 자체 위헌여부를 다투는 게 아니라 개별적·구체적 사건에서 법률조항의 단순한 포섭·적용에 관한 법원의 해석·적용이나 재판결과를 다투는 것에 불과해 재판소원을 금지하는 헌재법 제68조 제1항 취지에 비춰 부적법하다"고 밝혔다.

청구인들은 2005년 제정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재심을 거쳐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6개월 이상 지나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해 "형사보상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 안에 손해배상을 제기해야 한다"면서 패소를 선고한 바 있다. 이전까지는 재심 무죄가 확정된 날부터 3년이 소멸시효였다.

이 판결로 하급심에서 손해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가 상고해 열린 대법원 판결에서 줄줄이 패소했고, 헌재엔 관련 헌법소원이 이어졌다.

헌재의 이번 결정엔 피해자 등이 진실규명결정 또는 재심판결확정을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국가배상을 청구했다면 문제가 없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에 따라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피해자들은 국가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3년이 아닌 민법상 6개월로 적용해 국가배상 청구를 기각한 법원 판결에 대해 다시 한 번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

국가폭력 희생자를 지원하는 재단법인 '진실의힘'은 이와 관련 "반성을 보이지 않는 법원에 다시 한 번 재판받으라고 내모는 건 정부 도리가 아니다"며 "법무부는 피해자들 재심청구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 나서 피해자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하는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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