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증원 막았던 '전원합의체', 이번엔 김명수 임명 발목잡나
'전원합의체에서 리더십 우려' 野 반대논거 진위는?
전원 일치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비판 ↑
- 윤진희 기자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보수 야권의 반대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하자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는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보수 야당들은 김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또 야권은 김 후보자가 대법관 출신이 아닌데다 연수원 15기로 대법관들보다 연수원 기수가 낮다는 점을 들어 임명 반대 전선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런 약점을 가진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될 경우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 '전원합의체' 이유로 김 후보자 반대하는 野…정말 우려할 일일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의견이 엇갈리거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다수결로 판결을 내리는 '최고재판부'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이 지난 2015년 대법원의 재판업무 과중 등을 이유로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할 당시 주요 논거로 활용되기도 했다. 대법원의 재판 업무 과중이 문제라면 대법관을 증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반박논리에 대해 대법관을 증원하면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려워진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대법원의 이러한 논리는 타당성이 없음에도 대법관 증원 반대에 유효하게 작용했다. 연방대법관 수가 130여명에 달하는 독일 연방대법원이 각 소부 대표를 선출해 전원합의체 심리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우리 대법원의 논리는 궁색한 면이 없지 않다.
이러한 전원합의체 논리가 이번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 반대의 논거로 활용되고 있다. 김 후보자가 다른 대법관들보다 연수원 기수가 낮고 대법원 재판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전원합의체를 이끌어갈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원합의체 심리 본연의 목적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끄는 현행 대법원이 유독 전원합의체 심리에서 13:0, 즉 만장일치 결정을 자주 내놓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휘하의 전원합의체는 2015년 9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2012년 공직선거법위반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전원일치로 파기했다. 같은해 7월에는 변호사들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는 판결을 만장일치로 내렸다.
지난 2013년에는 중소기업이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됐다는 비판을 받은 KIKO 사건에서 전원일치 의견으로 은행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다수결에 따른 판결을 위해 치열한 토론과 논의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전원합의체는 사회적 중요성이 큰 사건이나 재판부 내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 이에 대한 사회적 파장 등을 고려해 이뤄지는 심리 형태로 활발한 토론을 통한 결론 도출이 가능해야 한다.
◇ 전원일치 비율 높다는 건 '제왕적 대법원장'의 방증
사법제도 전문가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전원일치’ 판결에 의구심을 표한다. 13:0이라는 숫자 자체가 대법관들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봉쇄됐다는 증거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14명의 대법관 가운데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3명이 하나의 사건을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 없이 모두 똑같이 판단하는 것은 다양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넘어 대법관들이 대법원장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대법원 판결은 법해석의 최종심급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대법원에서 수렴돼 판결의 형태로 사회에 다시 내보내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헌법은 한 명의 대법관이 아닌 다수의 대법관으로 대법원을 구성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적 파급효가 크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건을 대상으로 하는 전원합의체 재판이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 없이 만장일치 의견으로 나오는 것이야 말로 대법원의 기능저하라는 지적이다.
법조계에서는 통상 대법관으로 서울대출신 50대 남성판사가 임명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줄기차게 나왔다. 이 역시 대법원 구성의 획일화에 대한 우려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존 대법관들과 정치성향이 다른 즉 진보적 성향을 띠는 김명수 후보자의 대법원장 후보 지명이 전원합의체 운용의 어려움 등으로 비판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임지봉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대법원도 미연방대법원처럼 보수와 진보 성향 대법관이 거의 반반씩으로 구성되는 균형 잡힌 대법원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며 "균형잡힌 대법원이 구성이 되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전원합의체 재판에서 진보성향 대법관과 보수성향 대법관이 치열한 고민과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명으로 구성되는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은 통상 보수 성향 4명. 진보성향 4명, 중도성향 1명 등으로 세력 균형을 고려해 임명된다.
임 교수는 "전원합의체는 다수결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것이지 전원합의 즉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는 재판부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종 13:0의 일치된 의견으로 판결을 내린 것은 반대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봉쇄됐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끌었던 대법원에서 만장일치 전원합의체 판결이 많았던 이유는 대법원장이 대법관들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다양한 의견이 포섭됐다기보다 하나의 의견으로 많은 주요 사건들이 처리돼 왔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새 정부의 대법원장에게는 경직되고 획일화된 대법원을 개혁하라는 사명이 있는 것"이라며 "김명수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될 경우 전원합의체 운용이 어렵다거나 만장일치 판결이 나오기 어렵다고 해서 그것을 대법원장 부적격의 기준으로 볼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전원일치 비율이 낮을수록 대법관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한다.
대법관들이 서로의 법해석 결과를 토론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전원일치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의견이 수렴되지 않을 경우 다수결로 '법정의견'을 정하고 소수의견을 판결문에 남기는 것을 ‘다양성 확보’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판결문에 남은 소수의견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에 법원이 귀를 기울였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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