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소장이 언급한 '추상적 규범통제·재판소원'은 무엇?

전문가, 국민기본권 보장 ·법치주의 강화 위해 필요
추상적 규범통제는 의회 소수파 '패자부활전' 비판여론
두 제도 도입 땐 헌재 권한의 '무제한적 확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1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초청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기조발언을 하고 있다. 2016.3.1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국민의 기본권 강화 방안으로 헌법재판에 추상적 규범통제기능과 재판소원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초청 토론회에 참석, 이같이 밝혔다.

두 제도는 2009년 국내 헌법전문가들이 참여해 헌법 개정방안을 연구했던 '헌법연구 자문위원회'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국내 다수의 헌법학자들 역시 '추상적 규범통제'와 '재판소원제도'를 도입하면 법치주의와 기본권 보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반면 정치권 내에서 해결돼야 할 갈등을 모두 헌재에서 다룸으로써 민주적 다수결로 결정할 모든 사안을 헌재의 판단에 의존하게 돼 헌재 권한이 무제한적으로 확장된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 '추상적 규범통제'는 무엇?

일반 국민들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추상적 규범통제'는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을 심판하는 방식 중 하나를 뜻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위헌법률심판제도는 '구체적 규범통제'만을 허용하고 있다.

구체적 규범통제는 말 그대로 구체적인 소송사건을 재판할 때,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의 위헌성만을 심사하는 제도다. 반면 추상적 규범통제는 법원의 재판과 관련성이 없는 법률에 대해서도 위헌성을 심사할 수 있는 제도다.

구체적 규범통제제도 아래에서는 법원만이 위헌법률 심판 제소권을 갖지만, 추상적 규범통제제도를 도입하면 헌재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할 수 있는 제소권자의 범위가 확장된다.

추상적 규범통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국회에서 법률안이 의결되면 대통령, 총리, 양원의장, 60인 이상의 상원의원 등의 의결로 해당 법률안에 대해 헌재에 사전 위헌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

즉 법이 시행되기 전 단계에서부터 헌재에서 법률안의 위헌성을 심사 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점에 주목해 추상적 규범통제제도가 도입되면 '국민의 기본권 강화' 효과가 나타난다고 분석하고 있다.

추상적 규범통제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로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있다.

◇ 법원은 결사반대 '재판소원'…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우리 헌법재판제도에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 또 다른 하나는 ‘재판소원’이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판결을 헌법소원 심판 청구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을 말한다.

현행 '헌법재판소법'은 제68조 1항에서 '…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사람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며 헌법소원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가 1997년 12월24일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을 한정위헌 결정하면서 일부 '재판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7년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이후로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선언한 법령을 적용한 재판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고 재판소원을 허용하고 있다.

재판소원제도가 가장 활성화된 독일의 경우 1949년 본 기본법(헌법)에 따라 헌법재판소를 설립한 이유 자체가 '법원에 대한 통제'였다.

독일은 제3제국(나치) 시절 법원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반성적 시각 아래 연방헌재를 설립했다.

때문에 독일식 재판소원은 법원이 재판에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하면서, 헌법합치적 해석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위헌성은 없었는지를 헌법이념과 헌법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다시 심사하는 방식을 띤다.

재판소원의 본질이 이렇다보니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헌재는 실질적 '최종심 기능'을 하게 된다. 현행 3심제인 심급제도가 사실상 4심제가 되는 셈이다. 자연스레 대법원의 권위는 낮아진다. 때문에 법원은 계속해서 재판소원에 대한 반대입장을 표명해왔다.

하지만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소송경제'상의 문제를 불러오고 일반 법원과 대법원 등 사법기관의 법적 권위를 훼손한다는 비판여론도 만만치 않다.

독일 연방헌재가 다루는 헌법소원 사건의 90%이상이 재판소원 사건이라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 실제 도입하려면 '헌법 개정' 필요

추상적 규범통제와 재판소원제도가 도입되려면 헌법과 헌법재판에 관한 절차를 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법이 개정돼야 한다.

현행 헌법 111조 1항이 헌재의 권한을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은 헌재관장사항으로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을 명문으로 정하고 있다. 때문에 구체적 사건과 관련이 없는 법률의 위헌 심사 즉 '추상적 규범통제'를 도입 헌법에 해당 내용이 새롭게 들어가야 한다.

재판소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헌재가 1997년 한정위헌 결정을 하기는 했지만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이 명문으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조문이 개정돼야 재판소원제도를 확대 실시 할 수 있게 된다.

두 제도 모두 '국민기본권 강화'와 '법치주의 진전'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헌재의 권능이 막강해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추상적 규범통제'가 가능해지면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회가 여·야 각각의 입장차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모두 헌재로 들고오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최근 국회선진화법 논란이 이를 방증한다.

독일에서 추상적 규범통제가 의회 소수파를 위한 '패자부활전'이라는 이름으로 비판받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의 선출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한 국회가 다수결을 통해 해결해야 할 사항들을 사법부인 헌재가 결정하게 되는 문제점도 있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법의 개정으로 두 제도가 우리 사법제도에 정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충분한 논의와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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