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재판부의 핵심증인 거부…왜?
'SK비자금' 김원홍, 증인채택 거부…"아쉬워"
"충분한 심리가 이뤄져 새로운 증인으로 채택할 이유가 없다"(재판부)
"100% 직접증인이 어디 있는지 확인돼 있는데 심문은 해봐야할 것 아닌가"(SK측 변호사)
SK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핵심인물로 알려진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52)의 증인채택을 둘러싸고 재판부와 SK측 사이에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다음달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27일 열린 공판은 앞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변론재개를 요청해 이뤄진 터여서 당연히 '새로운 증인' 채택여부에 대한 양측 공방이 관심사였다.
그러나 담당 재판부는 이날 현재 대만에서 체포돼 국내 송환을 기다리는 김 전 고문에 대한 SK측의 증인채택 신청을 "김씨가 당장 내일 온다고 해도 증인채택 의사가 없다"며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사건심리를 맡은 서울고법 형사4부 문용선 부장판사는 "김원홍의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은 피고인이 제출한 녹취록과 녹음파일에 자세히 나와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센 최근 상황에서 재판부가 재벌에 대한 엄벌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핵심증인에 대한 증인채택과 심문은 직접 당사자인 SK측뿐만아니라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하는 대다수 국민들까지도 원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처벌에 앞서 도대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명백히 밝혀내는 것이 우선이다.
김 전 고문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이 사건의 실체를 쥔 핵심인물로 꼽혀 왔다. '무속인'이었다는 소문까지 나도는 그가 어떤 행각을 벌였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은 재판과정에서 줄곧 김 전 고문이 계열사 횡령을 주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해 왔다.
펀드 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회삿돈을 횡령한 주범은 김 전 고문이었다는 것이다.
최 회장 형제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주장과는 별개로 김 전 고문이 이번 사태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녹음파일 속 목소리로만 등장했던 김 전 고문은 '형제 분들은 모르는일', '재원이는 빼라', '사실은 이렇잖아' 등 사건을 지휘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대법원에 가면 무죄 받을 수 있다. 겁먹지 말라"고 조언했다.
재판부도 재판과정에서 김 전 고문에 대해 "파렴치의 극을 달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일부 최 회장 측 입장을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재판의 분위기를 전환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최 회장 측으로서는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마지막 반전카드로 김전 고문의 증언이 절박한 입장이었다.
그럴수록 재판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궁금증도 커졌다. 과연 재벌을 뒤에서 쥐락펴락했다는 김 전 고문의 말이 사실일까.
이런 상황에서 선고를 코앞에 두고 김 전 고문이 대만에서 체포됐고 국내 송환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어 재판부는 예정됐던 선고를 미루고 변론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이 막판 클라이막스를 향해 치닫는 상황에서 결국 재판부는 김 전 고문을 배제하고 판결을 내리는 쪽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충분히 심리가 이뤄졌고 녹취록만으로 판단이 가능하다"며 공소장을 일부 변경하는 것만으로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부는 최근 경제민주화 바람, 재벌범죄의 엄단 방침 등에 따라 SK측에 휩쓸려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단호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오히려 이같은 분위기가 역으로 재판부의 냉정한 판단을 흐린 독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여전히 행방을 알 수 없다면 모를까 김씨의 등장이 임박해진 시점에서 굳이 이를 외면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단호하다기보다 의도적으로 보인다.
아직 한 번의 변론이 더 남은 만큼 재판부가 또 다른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남아 있다.
재벌범죄에 대한 엄단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억울함이 남는 재판'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chind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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