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죄 '정신적 상해' 기준 마련한다(종합)

현재는 객관적 기준 없어 피해자 주장에 따라 판단
신체적 반응 측정, 뇌 자기공명영상 촬영 등 방법 제시

성폭력 범죄에 있어 '정신적 상해'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법원과 학계가 공동으로 나섰다.

서울중앙지법(법원장 황찬현)과 연세법·심리과학융합연구센터(센터장 박상기·김민식)는 20일 오후 2시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원에서 '강간치상죄의 정신적 상해 정량화 문제'를 주제로 법관, 법학·심리학 교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제1회 전문가 회의를 열었다.

현재 대법원은 성폭력 범죄에 있어 트라우마, 즉 '정신적 상해'를 법적 상해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이런 류의 정신적 상해를 입은 경우 징역 3년 이상의 형량을 정한 강간죄가 아니라 징역 5년 이상의 형량을 정한 강간치상죄가 적용된다.

그러나 정신적 상해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다.

성폭력 범죄에서는 피해자가 정신적 충격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객관적 기준이 없다 보니 피해자의 주관적 호소에 따라 정신적 상해 여부를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1심 판결 중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정신적 상해로 봐 강간치상을 인정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급성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장애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없다며 강간치상을 부정한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 천대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1심, 2심 판결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정신적 상해로 인정한 판례도 있고 아닌 판례도 있다"며 "개인의 구체적인 상태에 따라 판단을 달리한 것이어서 실제로 이들 사례에서 어떤 차이를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적 상해의 경우 객관적으로 계량화할 방법이 없어 재판실무상 곤란을 겪고 있다"며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한 기준이 마련된다면 수사·재판절차상 판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수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 문제와 관련해 "외국 사례를 보면 심리평가를 위한 전문가·전문기관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 있다"며 "구조화된 임상면접 등 평가를 위한 객관적 기준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육체적으로도 심박동수, 혈압 등 평가가 가능하다"고 정신적 장애판단을 위한 기준을 제시했다.

또 한상훈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정신적 상해를 입은 경우 신체적인 반응이 나타난다"며 신체적인 반응, 즉 뇌신경세포의 변화를 화면을 통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인 '자기공명영상(fMRI) 신경영상기법'을 제시했다.

한편 노태악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부는 범죄유형별 전문심리방식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며 "오늘 이 행사를 계기로 실무에 종사하는 법관들과 학계의 전문가들 간에 활발한 의견교환이 이뤄져 훌륭한 연구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향후 이어질 논의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abilityk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