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초부터 문자 연습"…李대통령 검토에도 '집단대출 티켓팅'

상담도 선착순…8월 입주예정자 "달라진 것 없다"
대출 늦어지면 단기 월세·연체이자 부담…실수요자들 발동동

수원 매교 팰루시드 입주 예정자들이 받은 문자(독자 제공)

(서울=뉴스1) 오현주 김종훈 기자

오늘(24일) 아침도 '집단대출 티켓팅 전쟁'이었습니다. 오전 10시 은행 상담 접수에 맞춰 9시 59분 58초, 59초, 정각에 문자를 보내는 연습까지 했습니다. 빨리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집단대출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지만, 입주를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신축 아파트 현장에서는 24일에도 '집단대출 티켓팅'이 벌어졌다. 입주 예정자들은 대출 상담 기회를 잡기 위해 휴대전화 여러 대를 동원하고 문자 전송 시간을 초 단위로 맞추는 등 잔금대출 확보 경쟁을 이어갔다.

8월 18일부터 입주를 시작하는 경기 수원시 권선구 '매교역 팰루시드'(2178가구) 입주 예정자들은 이날도 온라인 단체대화방에서 은행 상담 접수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전날(23일)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 토론회에서 집단대출 보완책 검토를 지시하면서 기대감이 커졌지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것은 없다"는 반응이다.

10년 넘게 전세로 살다 청약으로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성공한 30대 직장인 A 씨는 뉴스1과 통화하던 중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전화를 마친 그는 "오늘 드디어 선착순 상담 대상에 포함됐다"며 "이제는 대출을 받는 경쟁이 아니라 상담 기회를 얻는 경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오늘도 대출 상담을 받기가 너무 어려웠다"며 "입주는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8월 입주인데 상담도 선착순"…58초·59초 맞춰 문자 전송 연습

매교역 팰루시드는 2178가구 규모의 대단지다. 입주가 한 달도 남지 않았지만 은행권 대출 총량 관리 여파로 집단 잔금대출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상담을 선착순으로 접수하고 있고, 배정된 대출 한도도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일부 은행은 상담 접수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감됐고, 한도가 부족해 극히 일부 세대만 상담을 진행한 사례도 있었다.

은행별 대출 접수도 순식간에 마감됐다. KB국민은행은 이달 21일 대출 접수를 선착순 15가구만 받았고, 신한은행은 접수 시작 30분 만에 마감했다. 하나은행도 이날 오전 10시 대출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마감됐으며, NH농협은행은 배정된 대출 한도가 모두 소진돼 접수조차 받지 못했다.

입주 예정자들은 이제 금리나 우대 조건을 비교할 여유조차 없다고 말한다. 우선 상담 기회를 확보해야 대출 가능성이라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오전 10시 상담 접수가 시작되면 9시 59분 58초, 59초, 정각 등 시간을 달리해 문자를 보내본다"며 "휴대전화 기종에 따라 전송 속도가 다를까 봐 갤럭시와 아이폰을 번갈아 사용하고, 통신사별 문자 전송 속도를 시험해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출 상담 기회를 얻는 과정이 인기 아이돌 콘서트 티켓 예매보다 더 피 말린다"며 "혹시라도 은행에서 전화가 올까 봐 화장실에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동별 담당 상담사 한 명에게는 문자 수백 통이 몰린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상담 전화를 받아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A 씨는 "대기자가 워낙 많다 보니 전화를 받아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입주 예정자들끼리는 상담 연락을 받으면 '생존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잔금대출 한도는 수요의 10%도 안 돼…늦어지면 월세·연체이자 부담"
매교역 팰루세이드 단지 전경. 2026. 7. 24 ⓒ 뉴스1 오현주 기자

입주예정자협의회에 따르면 은행이 단지에 배정한 잔금대출 한도는 전체 수요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구당 필요한 잔금대출을 평균 5억 원 안팎으로 가정하면 전체 수요는 1조 원을 훌쩍 넘지만, 은행별 확보 한도는 50억~500억 원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입주 예정자들은 대출 문제가 장기화하면 추가 비용 부담도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A 씨는 "벌써 단기 월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있다"며 "대출 실행이 늦어지면 입주 지정기간 동안 중도금 대출 이자를 계속 내야 하고, 입주 기간을 넘기면 잔금 지연이자까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계약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대출이 늦는다고 계약을 취소하거나 입주 시기를 미룰 수도 없다"며 "정책을 완화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입주를 앞둔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빠른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입주 예정자들은 정부가 2024년 말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입주 당시 집단대출 문제에 대응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신속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도 입주가 임박한 실수요자에 대해서는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집단대출 문제가 장기화하면 입주 예정자는 물론 건설사와 금융권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입주가 임박한 단지에 대해서는 시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이번 사례는 투기 목적이 아니라 규제 이전 계약한 실수요자들의 문제"라며 "잔금대출이 막히면 입주자뿐 아니라 건설사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woobi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