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메르데카118' 앞에 선 오세훈, 랜드마크와 서울의 미래
- 김종윤 기자

(쿠알라룸푸르=뉴스1) 김종윤 기자 =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중심에 우뚝 선 '메르데카118'은 높이 678.9m의 세계 두 번째 초고층 건물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불리지만 메르데카118의 진짜 힘은 도시를 상징하는 맥락에 있다.
말레이시아 언어로 독립이라는 메르데카(Merdeka) 의미와 전통 직물 송켓(Songket) 문양에서 착안한 외관. 그리고 말레이시아 독립 선언이 이뤄진 인근 메르데카 스타디움을 잇는 설계까지. 한마디로 말레이시아의 과거-현재-미래를 담은 건축물이다.
도시 경쟁력을 외치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메르데카118을 찾아 "쿠알라룸푸르를 다 본 느낌"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초고층 건물이 아니라 도시 정체성을 응축한 결과물이라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다.
서울에도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도시 상징성만 놓고 보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메르데카118가 도시 정체성을 담은 랜드마크라는 것과 달리 서울 초고층은 주거·상업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도시 서사와 맥락을 반영하려는 시도도 아직은 부족하다.
오 시장이 말레이시아 순방에서 주목한 '리버 오브 라이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리버 오브 라이프는 쿠알라룸프라 시내를 흐르는 클랑강·곰박강 일대를 10여년에 걸친 역사 복원과 야간 경관 연출까지 재편한 통합 프로젝트다.
단순히 아름답고 화려한 강변 조성이 아니라 시민이 머무르는 공간을 만들고, 지역 고유 정체성을 상징하는 야경을 완성했다. 도시 전체의 구조를 다시 짜면서 '경관의 힘'을 키웠다.
서울에서도 다양한 랜드마크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개별 건물의 '스펙'이 아니라 '무엇을 담고 있는가'에서 결정된다. 쿠알라룸푸르가 수년 동안 강을 고치고 정체성을 건물에 새겼다면 그동안 서울은 외형 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오세훈의 서울은 2023년 '도시·건축 디자인 혁신' 계획을 발표하고 상징성과 개성을 담은 랜드마크 조성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어 'K-건축문화 종합지원계획'을 내놓고 K-건축의 혁신성 확보 의지를 밝힌 상태다. 오 시장의 동남아 순방은 서울이 지향하는 건축 혁신·수변·정원 도시 전략을 다듬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해외 사례를 서울에 그대로 가져오는 것만으로 도시 정체성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울의 역사·지형·시민 의식 등 다양한 구조적 제약 속에서 어떤 철학을 담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메르데카118 앞에선 오 시장과 우리가 찾아야 할 것도 바로 그것이다.
passionkj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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